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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주인 채은희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저녁 7시. 어스름이 깔리는 천호동 네거리에 하나둘 네온사인이 불을 밝힌다. 채은희씨(26)는 이제 막 좌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쟁반마다 깻잎을 곱게 깔고 꼼장어며 닭똥집·오징어·메추리·닭발·해삼·대합 등을 한쟁반씩 차려 내놓았다. 카바이드 불빛을 밝히는 것으로 준비완료. 이제 남은 것은 손님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문화극장 주변에서 포장마차를 시작한 지도 벌써 4년. 폭행죄로 복역, 전과 때문에 취직이 안되는 시누이 남편을 동정한 동네 파출소장이 준 5천원으로 포장마차를 차린 시누이를 돕다가 운전 기사인 남편이 위병으로 눕게 되자 그도 포장마차 전선에 뛰어든 것.
방세를 줄여 만든 17만원으로 손수레와 접시·술잔 등을 준비하고 거리로 나섰다. 다행히 천호동엔 장소비가 없어 그나마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말.
『4년 동안 한 길목만 지키고 있는 덕택에 단골만도 20여명을 확보했다』고 자랑(?)도 잊지 않는다.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가 손님이 많지요. 10시 전후에 오는 손님은 샐러리맨이나 상인, 자정이 넘어오는 손님은 근처 유흥업소 종업원들이 대부분 이지요.』 채씨는 『여자끼리 와서 소주 2병쯤 거뜬히 비우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새 풍속도를 들려주기도 한다.
통금이 해제되면서 그의 폐점 시간도 늦춰져 새벽 6시가 돼야 좌판을 거둔다. 곧바로 시장으로 달려가 그날 저녁에 쓸 안주감을 챙겨 집에 돌아오면 8시 30분. 고아가 된 조카들의 등교 준비를 해주고 집안 일을 마무리지으면 10시가 된다.
낮 2시 안주감을 손봐두러 일어날 때까지가 그의 취침시간. 하루 4시간 밖에 잘 수 없어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 『장사하고 남은 안주감은 집에 가져와 먹지요. 먹을 것은 늘 있지만 너무 피곤해 먹을 수가 없어요.』
피곤 외에 그를 괴롭히는 것은 단속. 단속에 한번 걸리면 3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그날 장사는 헛장사」가 되고 만다. 지난 1월 노점상인들과 함께 지역국회의원에게 진정서도 내보았지만 「별무소득」이었다고. 『그래도 고마운 이들이 많아요. 단속으로 며칠 쉬었다 나오면 꼭 들러 안부를 묻고 격려해 주는 이가 많아요. 취객들이 술을 더 팔지 않는다고 심한 욕을 해도 이런 분들 때문에 다 잊고 살 수 있지요.』
채씨의 월소득은 25만∼50만원. 겨울보다는 오히려 여름 벌이가 괜찮다. 4년간 모은 재산은 3백만원. 전세금과 l백만원을 주고 산 용달차가 전부다. 『요즘도 6개월짜리 1백만원 적금을 붓고 있다』는 그는 5백만원이 모이면 시장 안의 좌판을 사들여 단속에 쫓기지 않고 장사해 보고 싶은 게 꿈이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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