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자담배 맘놓고 피다간 일반담배보다 '니코틴 2.6배' 흡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월 담뱃값 인상을 계기로 전자담배를 피기 시작한 손모(40)씨. 그러나 전자담배 사용 3주후부터 목이 붓더니 입안이 헐고 물집이 발생해 병원 치료를 받아야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3월 박모(51)씨는 군복무 중인 아들이 전자담배 충전 중 폭발로 인해 얼굴에 1도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담뱃값 인상으로 전자담배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담배 용액 수입량은 66t으로 2012년 8t보다 8배 넘게 급증했다. 그러나 전자담배는 아직까지 안전 기준과 유해성 여부가 명확하지 않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중국산 저가 전자담배가 무분별하게 국내 시장에 유입되면서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들이 니코틴 원액을 직접 구매해 전자담배 용액을 제조하는 등 니코틴 오·남용 사례가 발생해 국민 건강 보호 차원에서 담배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국소비자원과 국가기술표준원의 공동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자담배는 액상의 니코틴 실제 함량이 표시와 달라 오·남용의 우려가 있다. 또 오히려 더 많은 니코틴을 들이마시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일부 전자담배 충전기(직류전원장치)는 안전기준에 부적합해 리콜 조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조사는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의 문제제기를 반영해 실시했다.

소비자원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전자담배 니코틴 액상 25개 제품에 표시된 니코틴 함량과 실제 니코틴 함량을 조사한 결과 10개 제품(40%)이 10%이상 오차가 있었다. 또 니코틴 농도가 12mg/ml인 전자담배 제품 18개의 기체상 니코틴 함량을 측정해 보니 무려 94.4%(17개 제품)가 중간 농도(니코틴 0.33mg/개비)의 연초담배보다 개비당 기체상 니코틴 함량이 1.1~2.6배 높았다.

전자담배 판매점들은 12mg/ml로 니코틴 원액을 희석하면 중간 농도의 연초담배와 비슷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결국 연초담배와 같은 흡연 습관을 유지할 경우 전자담배보다 더 많은 니코틴을 흡입할 우려가 있는 셈이다.

13개 전자담배 제품(52%)의 기체에서 비록 연초담배보다 낮은 수준이었지만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또는 아세트알데히드가 검출됐는데 1개 제품에서는 연초담배보다 1.5배 많은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었다.

니코틴을 1%(10mg/ml)이상 포함하는 니코틴 액상은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라 유독물질로 분류돼 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원의 판매실태 조사 결과 니코틴 원액(38mg/ml~685mg/ml)이 전자담배 판매점을 통해 판매되고 있고 해외 직접구매로는 1000mg/ml의 니코틴 원액까지 쉽게 구입할 수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니코틴 치사량은 성인 기준으로 40~60mg(체중 1kg당 0.5~1.0mg)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담배 판매점에서는 니코틴 희석에 필요한 설명서나 계량할 수 있는 기구를 주지 않고 용기에서 떨어지는 액상 방울 수로만 계산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안내하고 있어 니코틴 남용의 우려가 높다. 조사대상 25개 제품 역시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명칭·신호어·그림문자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른 경고 문구를 모두 표시한 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12개 제품(48%)은 니코틴 함량 단위(mg/ml)를 표시하지 않았고 12개 제품(48%)은 용기가 안약과 비슷해 오용의 우려가 높았으며 1개 제품(4%)은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과일그림이 용기 표면에 그려져 있었다. 이와 관련 15개 제품(60%)은 어린이 보호포장을 하지 않아 안전사고의 우려도 높았다.

실제로 2012년부터 지난 4월까지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전자담배 위해사례는 63건으로 이 중 절반 가까운 29건이 담뱃값이 오른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집중적으로 접수됐다. 위해사례를 분석해 보니 전자담배 액상과 관련해선 구토·가슴통증·구강내 염증 등 사용 후 부작용 사례가 20건(31.7%)으로 가장 많았다. 니코틴 액상을 안약이나 약품으로 오인해 눈에 넣거나 섭취한 사례가 8건(12.7%), 니코틴 액상을 유아가 가지고 놀다가 빨거나 눈에 넣은 사례도 3건(4.8%)이 있었다. 전자담배 기기 관련해선 배터리나 충전기가 폭발하거나 화상 사례가 20건 발생했다.

전자담배로 인해 다친 경우도 37건이나 됐다, 전자담배 액상으로 인해 두통·구토·어지러움 등을 느낀 사례가 10건(27%)으로 가장 많았고, 안구 손상 8건(21.6%), 구강내 염증 5건(12.9%) 등이었다. 전자담배 기기로 얼굴·팔·손에 화상을 입은 경우는 8건(21.6%)이었다. 소비자원은 “유럽연합 등에서는 니코틴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어린이 보호포장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니코틴 농도(20mg/ml)와 액상 용량(10ml)을 제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만큼 국내에도 관련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은 이번 조사를 토대로 전자담배 액상의 니코틴 농도 및 표시기준 마련 어린이 보호포장 도입 등 제도개선을 관계기관에 건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니코틴 액상을 어린이의 손에 닿지 않는 안전한 곳에 보관해야 하며 연초담배와 동일한 빈도로 피우면 더 많은 니코틴을 흡입할 우려가 있으므로 적정하게 흡연할 것”을 당부했다.

한편 국가기술표준원이 시중에 판매되는 32개 전자담배 배터리와 충전기(직류전원장치)조사 결과 충전기 10개 제품이 감전 위험이 있고 주요 부품이 임의로 변경된 것으로 나타나 리콜명령을 내렸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전자담배 충전기 구매시 정부가 안전성을 인증한 KC 마크를 우선 확인하고 제품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전자담배 전용매장에서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