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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R&D센터 D는 없고 R만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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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부는 그동안 '동북아 연구개발 허브(중심)'정책을 지속적으로 주창해 왔다. 실제로 한국에 R&D센터를 세우는 다국적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 규모나 수준은 동북아의 허브가 되기엔 너무나 초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외국계 IT업체 관계자는 "한국의 R&D센터는 D(개발)는 없고, R도 첨단기술 연구가 아닌 시장정보 조사에 불과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 외국 기업 R&D센터 '속빈 강정'=R&D센터가 제 기능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양질의 고급인력을 풍부하게 갖추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본지가 입수한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원이 20명도 안 되는 외국기업 연구소가 60%에 달했다. 또 외국인 연구원이 연구소당 0.19명에 그쳤다. 박사급 외국인 연구원은 조사 대상 209곳에서 10명 남짓이다. 과기정책연구원 측은 "고급 기술을 가진 본사 연구인력이 한국에서 지식을 전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실정에 맞게 단순히 제품을 개량하는 수준에 그치는 곳이 많다는 의미다.

그래서 일부 외국기업은 연구개발 사무실을 R&D센터라고 부르는 데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한 외국기업 관계자는 "사실은 한국 고객의 지원센터 수준"이라며 "한국 정부의 희망에 맞춰 R&D센터로 이름을 달았을 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보니 고용창출 효과도 미미하다.

정부는 2004년부터 국내 이공계 인력을 고용하는 외국 기업에 임금의 절반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2004년 10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이 지원금으로 고용된 인력은 4개 업체 47명 정도다.

◆ 중국.인도가 무섭다="2004년까지 한국은 IT 분야에선 '테스트 베드(신기술 실험장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인도 등 신흥 IT 강국이 떠오르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한 외국계 기업 임원의 설명이다. 짐 굿나이트 미국 SAS 회장은 "다국적기업들은 중국과 인도를 신규 투자 지역으로 주목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는 1997년 109개에 불과하던 다국적 기업의 R&D 센터가 2004년 말 현재 690여 개로 여섯 배 이상 늘었다. 중국에 대한 외국 기업의 신규 프로젝트 투자건수는 2000년 100건에서 2004년 1395건으로 5년 만에 14배가량 급성장했다.

임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책임연구원은 "중국과 인도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R&D센터'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역협회 무역연구소 조문희 연구원은 "중국과 인도는 영어 구사력과 풍부한 IT 인력, 우수한 기초과학 등으로 선진국의 해외 아웃소싱 대상국 중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 선택과 집중으로 R&D 유치=동북아 R&D 허브 정책은 첨단기술을 유치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고급 인력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선 우리 실정에 맞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업연구원 장윤종 박사는 "아무 연구소나 들여올 게 아니라 정보통신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부문에서, 그것도 선진 기술을 갖고 오는지를 꼼꼼히 챙겨야 유치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도 "다국적기업이 중국.인도로 가는 것은 내수시장 규모가 차이가 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규모를 떠나 어떤 첨단 기술을 유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 규제완화와 지원정책 확대 등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세금혜택 및 연구비 지원 등을 과감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R&D 투자에 따른 세금 혜택이 싱가포르 등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진다. 싱가포르는 R&D 투자금의 200%를 손비로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R&D 투자비용의 증가분만, 그것도 전부가 아니라 증가분의 40%만 세액공제를 해 준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이로 인해 똑같은 금액을 R&D에 투자해도 싱가포르에서의 세금혜택이 많게는 우리나라의 4~5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규제완화도 과제다. 주한 미상공회의소 테미 오버비 부회장은 "외국기업은 한국의 노동 비용과 질의 경쟁력은 둘째치고 정부 규제를 큰 애로 사항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홍주연.윤창희.심재우 기자

참여정부의 동북아 R&D 허브 발언록

◆ 노무현 대통령

▶"동북아 물류, 연구개발(R&D) 허브로 발전해 갈 한국에 지금 투자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2005년 11월 18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강연에서)

▶"대덕특구에 외국 유수 연구소와 첨단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세계적인 R&D 거점으로 육성하겠다."(2005년 3월 31일 대덕연구개발특구 비전 선포식에서)

◆ 이해찬 국무총리

▶"중국과 인도가 뒤쫓아오는 흐름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R&D와 인적자원 개발이다. 대덕특구는 향후 국가 전체 성장동력을 이끌어갈 사업이다."(2005년 12월 15일 대전 스파피아호텔에서 목요언론인클럽과의 간담회에서)

◆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외국의 우수 연구기관 유치 등을 통해 한국이 동북아 R&D의 허브가 되도록 할 것이다."(2004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다국적기업의 본부나 R&D센터를 유치하는 것은 외국인 투자의 질적 고도화를 의미한다. R&D센터 유치를 내년도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의 핵심 과제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2005년 11월 16일 부산에서 열린 APEC 투자환경 설명회에서)

◆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우리나라는 IT 839 전략을 통해 IT 허브 국가로 발돋움하려 한다." (2005년 12월 3일 인텔개발자회의 축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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