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시혼 깃든 '봉산산방' 2년 넘게 폐가로 방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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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는 대문(사진위)과 2년째 방치돼 폐가 같은 봉산산방. 김성룡 기자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이 70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31년간 기거했던 서울 남현동 2층 양옥집 봉산산방(蓬蒜山房)이 2년 넘게 폐가로 방치돼 있다.

이미 복원돼 지금쯤 미당의 유품 전시관, 북카페 등을 갖춘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야 하지만 소유자인 관악구가 리모델링 비용 7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손도 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악구는 재정이 어려우니 서울시에서 복원 비용을 지원해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03년 말 봉산산방 매입 비용을 지원했던 서울시는 더이상 돈을 대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2004년 구의 의뢰를 받아 복원 설계를 했던 건축환경연구소 '광장'에 따르면 봉산산방은 콘크리트 구조인데도 튼튼한 집은 아니다. 눈.비 등 자연환경에 아무런 방비 없이 장기간 노출되면서 안전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개.보수가 시급한 상황이다. 시와 구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동안 자칫 대시인의 손때가 묻은 거처를 영영 잃게 될 수도 있다.

봉산산방은 2003년 말 건축업자에게 팔려 철거될 뻔했다. 하지만 "미당의 창작 흔적이 남아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며 일부 문인을 중심으로 철거 반대 여론이 형성되자 시가 특별교부금 7억5000만원을 내려보내 구가 사들이면서 겨우 철거를 면했다. 당시 시의 입장은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은 보존하겠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복원 비용. 당초 구는 리모델링 비용을 3억원으로 잡았다. 시가 매입비 6억9000만원과 함께 리모델링 비용의 절반인 1억5000만원 등 총 8억9500만원을 지원해 주면 구 예산 1억5000만원을 보태 곧바로 문화공간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계획대로 실행됐더라면 봉산산방은 지난해 상반기 공사를 마치고 하반기에는 일반에 개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시는 7억5000만원만을 내려보내며 부족분은 구 예산으로 충당하라고 통보했다. 여기에다 구가 2004년 '광장'에 복원 설계를 의뢰한 결과 리모델링 비용이 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구는 지난해 초 서울시에 리모델링을 위한 특별교부금 7억원을 요청했지만 '애초부터 시가 매입만 해주면 복원.운영은 구에서 알아서 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대답만 들었다. 구는 올해에도 특별교부금을 요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 관계자는 "자치구 소유 재산의 복원과 운영은 구에서 알아서 해야 할 일"이라는 입장이다. 복원 방침을 정하고 7억원이나 쏟아부었지만 시와 구 어느 쪽도 적극적으로 추가 비용 지원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미당의 제자인 동국대 윤재웅(국어교육과) 교수는 "위대한 시인의 하나 남은 창작의 산실이 폐허처럼 방치돼 동네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며 "시든 구든 복원하기로 해놓고 2년 넘게 나 몰라라 내버려 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광장의 김원 대표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오래되면 금이 가고 그 틈으로 빗물이 스며들면서 철근이 부식돼 결국 무너진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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