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후야오위의 성공 스토리 제1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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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1국 하이라이트>
○ . 이창호 9단(한국) ● . 뤄시허 9단(중국)

후야오위(胡耀宇) 8단은 프로들이 다 인정하는 고수다. 아직 국제대회 우승컵은 없지만 이창호 9단에게 3승2패로 앞서는 것만 봐도 그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다. 별명은 둔도(鈍刀), 즉 무딘 칼이다. 이세돌 9단의 날카로움과는 반대되는 기풍이지만 석불(石佛.이창호)을 깨뜨리는데는 날카로운 칼보다 둔도가 낫다는 게 중국 측 해석이다.

장면 1=지금부터 후야오위의 성공담을 감상해보자. 흑▲로 백의 허리를 갈라간 후야오위는 이후 행마의 교본이라 할 만한 강인하고 정확한 행마로 백을 압박한다. 우선 37은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이론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대기 전법이고 41은 두점머리의 약점을 겨냥한 강력한 젖힘이다. 백이 A로 끊으면 흑은 B로 끊어 맞서게 된다.

43은 행마의 틀. 강타를 던지기 전에 호흡을 조절하며 상대의 동태를 살핀다. 44로 달아난 뒤 흑의 다음 한 수는 어디일까. A에 잇는 것은 하책이다.

장면 2=45가 소위 '이 한 수의 곳'이었다. 귀의 백에 기대며 중앙 백을 노리는 절호의 한 수. 박영훈 9단은 "흑이 흐름을 탔다"고 말한다. 이창호 9단은 감히 이 수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귀를 버리는 쪽을 선택한다. 흑은 공격을 통해 55까지 두툼한 실리를 얻었고 귀중한 선수를 잡아 우하 쪽을 선점하게 됐다. 흑의 성공 스토리 제1막이다.

<참고도>=백1로 받아 귀를 살리고 싶지만 흑2로 공격해 오면 백△도 약해 백은 숨이 가빠진다. 이건 한 방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 가슴 아프더라도 귀를 버리고 길게 가는 게 이창호 스타일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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