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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곤의동물병원25시] 참는 개, 짖는 개, 무는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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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개띠 해인 올해는 내가 동물병원을 개업한 지 딱 10년째 되는 해다. 그동안 많은 동물을 봐왔고 그만큼 많은 보호자를 만나왔다. 우리 병원에서 건강을 되찾아 간 동물들도 있었고, 안타깝게도 먼저 하늘나라로 간 동물들도 있었다. 그 동물들과 보호자들은 그때마다 많은 사연과 얘깃거리를 남겨주곤 했다. 앞으로 그 이야기들을 지면을 통해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사진의 강아지는 '영심'이라는 이름의 40일 된 골든 레트리버종 강아지다. 세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 졸려 진료대 위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 병원이 어떤 곳인줄 몰라서 겁도 없이 졸고 있는 것이다.

병원에 오는 동물들은 참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 영심이처럼 병원에서 진료받아 본 경험이 없는 어린 강아지들은 태평하게 졸기도 하지만 한두 번 정도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아 본 녀석들은 대체로 무서워 안절부절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병원에 오면 여기저기 만지고 체온 잰다고 항문을 체온계로 찌르고 아픈 주사를 맞고 하니 그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한 게 아니다. 사람들도 병원 가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그런데 그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유형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의 경우는 순종형이다. 대부분의 애완동물이 그렇다. 병원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조용히 순종한다. 몇 번의 경험으로 병원에서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료대 위에서도 납작 엎드려 죽은 듯 있고 주사 맞을 때도 아무 소리도 지르지 않고 잘도 참는다. 믿지 않을지 모르지만 대개 이런 성향의 동물들이 치료도 잘 된다.

두 번째 유형은 저항형이다. 이런 동물들은 병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오는 걸 알 수 있다. 병원 바깥에서부터 소리를 엄청나게 질러대기 때문이다. 병원에 절대 들어가기 싫다는 것이다. 소리지르기는 진료가 끝나고 병원을 나서기 전까지 끊임없이 계속된다. 진료실에서도 절대 비협조적이며 주사 맞을 때 대소변을 싸대며 저항의 의지를 나타낸다. 때로는 수의사나 다른 병원 식구들을 물거나 공격하기도 한다. 치료가 어려워짐은 물론이다.

마지막은 두 얼굴형. 이 유형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의 혼합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진료실에 들어와서 치료받을 때까지는 순종형이다. 그렇게 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진료가 끝나고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가는 순간 극단적인 저항형으로 돌변한다. 마치 아이가 억울함을 엄마에게 이르는 듯이 보호자의 품에서 병원 스태프들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짖어댄다. 이런 경우는 살짝 배신감도 느껴진다.

사람의 성격이 다양한 것처럼 동물들도 나름대로 자기만의 성격이 있다. 수의사 초년병 시절에는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이렇게 동물들의 행동이나 목소리.표정 등에서 느낄 수 있다. 병원에 자주 오시는 분은 이렇게 말한다. "꼭 소아과 같아요."

박대곤 수 동물병원장 (www.petclin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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