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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의 新 생활명품] 눈의 갈증까지 풀어주는 센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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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 22면

“덴마크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지켜본 스칸디나비아 이웃나라 사람들의 말이다. 그런 덴마크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라면 품질은 일단 안심해도 좋을 듯하다. 과장된 내용과 화려한 포장에 속았던 후회는 없을 테니.
덴마크가 어찌 치즈나 아이스크림 같은 낙농제품만 만들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다른 물건도 얼마든지 있다. 내게 덴마크란 나라는 SPU 카트리지로 친숙하다. 비닐 LP의 소리 골을 훑어내는 작은 검정 베이크라이트 뭉치는 음악의 감동을 30년 넘게 이어주고 있다. 카트리지에 관한 한 딴청 피우지 않은 순정주의자의 고집은 이유가 있다. SPU의 신뢰는 음악의 감동을 위해 헌신한 덴마크인의 정직함 덕분이다.
덴마크에서 만든 물건은 하나같이 본질에 충실하다. 기능과 디자인의 멋진 양립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덜어낸 간결함과 재료 본연의 특성을 강조한 투박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목재나 금속 혹은 플라스틱 같은 뻔한 소재조차 일단 덴마크인의 손을 거치면 뭔가 다른 느낌이 된다.

<17> 스텔톤 보온병

요즘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 우리나라에서 부쩍 주목받고 있다. 일상생활의 아름다움을 실천한 공감대 형성 덕분이다. 아름다움을 삶의 매 순간에 끌어들이는 일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예술적 감성은 바라보고 동경하는 것만으론 충족되지 않는다. 일상의 시간을 통해 보고 만져지고 느껴져야 제 것이 된다. 주변 사람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도는 달라도 아름다움의 유혹에 빠져있다. 인간 욕망의 끝 지점쯤에서 예술품을 갖고 싶은 점은 이상할 게 없다. 소유하지 못한다면 예술적 삶의 향유라도 펼쳐야 위안이다.

아름다운 디자인의 생활용품을 쓰는 일은 예술적 삶의 기대를 실천하는 일이다. 업무의 피곤함과 생활의 단조로움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채워주는 기능이 중요하다. 형태와 색채가 주는 즐거운 상상력은 삶의 시간을 격조로 끌어올린다. 일상적 삶의 충족이 사회적 풍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디자인 철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확신을 먼저 실천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단순해 보이지만 깊이가 있다.

기능·본질 양립시킨 바우하우스 전통 계승
덴마크 생활용품 브랜드 스텔톤(stelton)의 보온병을 처음 받아든 순간 간결하고 힘 있는 디자인에 매료당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보온병도 있는 것이다. 물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튼튼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무심코 다루기 쉬운 보온병에 감각적 아름다움을 입히면 생활예술의 경지가 된다. 용도를 뛰어넘는 새로운 아름다움은 누군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모두 인간의 몫이다.

스텔톤 보온병은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다. 스포츠용 신발과 가구를 만들던 동사는 이후 스테인리스 재질을 사용한 주방용품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전통은 뿌리가 깊다. 현대 디자인의 명장이라 할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1902~1971)을 주목해야 한다. 아르네 야콥센 뒤엔 바우하우스를 이끌었던 르 코르뷔제, 미스 반 데어 로에 같은 인물들이 있다. ‘기능이 곧 본질’이라 여겨 장식을 빼버린 현대 디자인의 출발을 연 거인들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바우하우스의 흔적을 찾아 유럽을 돌았다. 내용을 자세히 알면 관심과 흥미가 커지기 시작한다. 스텔톤 보온병과 유사한 디자인을 본 적 있다. 아! 이제 연결이 된다. 실린더 디자인이라 이름붙인 아르네 야콥센의 금속 작업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단순 간결하게 기능과 본질을 양립시킨 바우하우스의 전통이 이어졌을 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아르네 야콥센의 2세대 버전이라 할 보온병은 1977년 후배 디자이너 에릭 마그누센의 역량으로 마무리됐다. 금속을 플라스틱 계열의 소재로 바꾸고 다양한 색채를 도입했다. 위대한 전통을 이은 멋진 물건이다.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이 더해져 친숙하다. 옆에서 보면 귀여운 병아리가 연상된다. 눈에 해당되는 두 개의 검정 버튼은 본체의 분리를 위한 용도다. 부리는 물 주둥이로 날개는 둥근 손잡이로 바뀌어 유려한 곡선과 곧은 직선이 공존한다. 선과 색채의 조화는 유기적 흐름으로 날카로움이 없다. 깜찍하며 재미있는 보온병의 자태는 손에 쥐기도 편하다.

지금도 통하는 40년 전 마그누센의 디자인
혹한의 몽골 초원에서 추위를 녹여주던 뜨거운 차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말 젖 냄새 밴 수태차는 조악한 중국제 진공보온병에 담겼다. 찌그러진 붉은 꽃무늬 양철통 케이스는 기름때에 절어 거무튀튀했다. 하지만 속에 담긴 수태차의 온기는 모자라지 않았다. 보온병에 가두어 둔 열이 사람을 이토록 행복하게 해주는지 몰랐다.

이후 보온병을 쓰기 시작했다. 뜨거움이 손바닥의 감촉과 김으로 피어오르는 입체적 자극을 흘려버릴 수 없다. 어떤 물건을 쓰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평소 냉온 정수기의 레버를 누르는 건조한 조작으로 물을 받아 마셨다. 갑자기 양계장 닭장에 갇힌 닭의 물공급 장치가 생각났다. 그동안 닭처럼 물을 마셨던 것은 아닌지. 형식이 내용을 규정하는 게 삶의 모습이다. 물 마시는 일조차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있다. 눈과 입의 행복한 조화를 찾아야 방법이다.

보온병은 아내의 손길 미치지 않는 작업실에서 이전부터 사용했다. 유명 상표를 단 천편일률적 디자인의 일본제는 이미 두 개나 있다. 보온병은 모두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야 하는 줄 알았다. 제아무리 좋은 성능을 지녔다 해도 이제 사절이다. 목의 갈증만큼 눈과 손의 감각도 챙겨주어야 도리다. 제 손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아름다움은 언제나 남의 몫이 된다.

커피가 끊긴 중간의 시간, 불현듯 뽀얀 김이 오르는 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진다. 그리움 마냥 손 내밀어 잡고 싶은 손잡이의 따뜻한 감촉이 더 필요한지도 모른다. 스텔톤 보온병은 주둥이를 내민 새처럼 친근한 표정으로 서 있다. 만지고 보는 일이 즐거우니 마시는 물조차 각별해진다.

몇 년을 쓰는 동안 지루하지 않았다. 보온병 새가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덕분이다. 시선의 위치와 각도에 따른 표정도 다르다. 시간을 초월한 기능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알겠다. 이를 우아함이라 바꾸어도 별 무리가 없다. ‘굿 디자인’이 만들어준 즐거움은 생각보다 컸다.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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