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금요일] 저성장 해법은 아기울음? 여성 경제활동 늘려 생산성 높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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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알맞은 때에 태어난 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월가의 예언가’로 불리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바이런 윈(82) 부회장이 최근에 쓴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말하는 ‘우리’는 인류 역사에 유례 없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 기성 세대를 일컫는다. 윈 부회장의 글은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최근에 내놓은 보고서 ‘고령화 시대의 생산성’을 인용해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미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하는 내용이었다.

 맥킨지 산하 연구소인 맥킨지글로벌연구소(MGI)가 만든 이 보고서에는 한국을 비롯한 주요 20개국의 과거 50년(1964~2014년)과 미래 50년(2015~2065년)의 경제성장률 분석이 담겼다. 과거 50년간 국내총생산(GDP)은 한 해 평균 3.6%씩 증가했는데, 앞으로 50년간은 2.1%로 뚝 떨어진다는 전망이다.

리처드 돕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 소장

 보고서 저자인 리처드 돕스 MGI 소장은 14일 e메일 인터뷰에서 “초고속 경제성장을 이끈 두 날개는 인구 증가와 생산성 증대다.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생산성 증대를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연평균 경제성장률 3.6%에 인구 증가와 생산성이 각각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분석했다. 노동력 공급과 소비 진작 등 인구 증가가 성장률에 기여한 몫은 1.7%, 생산성 증대가 기여한 몫은 1.8%로 산출됐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출산 감소 현상이 지속된다면 인구 증가의 기여도는 0.3%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성이 현재(1.8%)와 같은 수준이라고 가정하면 미래 50년간 경제성장률은 2.1%로 전망된다는 주장이다.

 향후 50년간 한국은 연평균 4.3%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과거 50년간 연평균 성장률(7%)에서 39% 감소하는 것이다. 성장률 하락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해서는 저출산 흐름을 돌이키려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인구 감소에 대비해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에서는 앞으로 50년간 근로자 수가 15%(약 360만 명)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보고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불필요한 규제 개선 ▶일자리에 필요한 맞춤형 교육 ▶서비스 산업의 장벽 철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 ▶능력 있는 고령 근로자의 퇴직 연령 늦추기 등을 제시했다. 한국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5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돕스 소장은 “생산성 개선이 인구 감소를 보완할 수 있는 핵심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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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산성 향상을 강조하는 이유는.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면 생산성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생산성에 따라 1인당 소득이 좌우된다. 생산성은 국민 개개인이 얼마나 잘사는지를 결정짓는 지표이기도 하다.”

 -저출산 대응책과 생산성 향상 정책은 어떻게 다른가.

 “저출산 대책과 같은 인구 정책은 그 효과가 한참 뒤에 나타난다. 예를 들어 25년 후인 2040년에 일할 사람 수는 지금 태어나 있는 사람 수로 이미 정해져 있다. 생산성 향상 노력의 효과는 좀 더 직접적이다. 출산율은 국가 전체의 부채나 사회 보험, 부양 부담 등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생산성은 개인의 생활 수준과 더 밀접하다.”

 -OECD 최저 수준인 한국 출산율(1.21) 문제의 심각성은.

 “낮은 출산율이 한국에 큰 문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일본 등 다른 저출산 국가와 비교해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국가 부채가 낮고 공적연금 보유 기금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대부분 선진국의 공적연금은 그때그때 필요한 보험료를 걷어 연금을 지급하는 ‘페이 애즈 유 고(pay as you go)’ 제도를 택해 저출산으로 인한 부담이 크다.”

 -한국이 불리한 점은.

 “다른 저출산 국가들보다 이민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저출산 대응책으로 이민 수용을 검토해볼 수 있겠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과 비교하면 문화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은 지체되는데 생산성이 높아지면 일자리가 줄어들 텐데.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 생겨 삶의 질도 좋아진다. 선진국은 이런 방향으로 근로시간을 꾸준히 줄여왔다. 한국에 지금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2시간으로 분석 대상 20개국 가운데 가장 길다. 생산성은 낮다. 생산성 수준을 평가하는 근로자 1인당 GDP는 7만 달러(구매력평가지수 기준)로 선진국 중에서 꼴찌다. 생산성 1위인 미국(11만1000달러)보다 49% 적다.

 생산성 향상으로 인구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블랙스톤의 윈 부회장은 “인구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생산성이 큰 폭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지난 수십 년간 스마트폰·PC·인터넷 등 기술 혁신이 활발했던 점을 상기하면 앞으로 이런 속도로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생산성 향상 문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서비스 산업 선진화 같은 경제정책의 일환으로 다뤄졌지 저출산 대응책으로서 논의는 활발하지 않았다”며 “저출산으로 인해 미래에 노동력 공급이 줄어드는 게 예상되면 인구 정책 차원에서 생산성 향상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위원은 “그러나 지금 같은 저출산 현상이 지속할 경우에는 생산성을 아무리 높여도 심각한 상황에 빠질 것이기 때문에 저출산 극복 방안과 동시에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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