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당신의 안전은 이관 중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강인식
강인식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40대 직장인 A는 소시민적으로 살았다. 십 수년간 월급쟁이로 살다 보니 부동적이고 수동적이고, 사회 돌아가는 데 관심이 없다. 정치에 대해선 기대-실망-환멸-냉소를 거쳐 무관심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생각을 바꿨다. ‘내 아이가 살려면 사회가 변해야 하고 그러려면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도 했다. 국민안전처의 ‘안전신문고 앱’도 스마트폰에 깔았다.

 몇 달 전이다. 출근하다 빌딩에 환풍 장치가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걸 봤다. 돌풍이 불면 그냥 떨어질 것 같았다. 대로변이라 큰 사고가 날 수 있겠다 싶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신문고 앱에 올렸다. 깨알같이 ‘관련 규정이 필요해 보임’이라는 의견까지 달았다. 뿌듯하기도 했고, 이런 건 처음이라 두근거리기도 했다. 소시민이 아니라 시민으로 살려고 했으나 소심함까지 어쩔 순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안전처로부터 문자가 왔다. ‘귀하의 신문고 사항은 서울시 해당 구청으로 이관됐습니다.’

 며칠 뒤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저희가 건물주에게 환풍 장치를 잘 설치하라고 하면 될까요?” “아, 그게요. 관련 규정은 없는 건가요.” “규정이요? 저희 소관이 아닌데요.”

 그런 대화가 오간 뒤 문자가 왔다. ‘귀하의 사항은 국민안전처로 이관됐습니다.’ ‘안전처가 문제를 해결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았다. 며칠 뒤 또 문자가 왔다. ‘귀하의 신문고 사항은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됐습니다.’ 아, 전자제품과 관련돼 그런가.

 그리고 얼마간 소식이 없다, 또 문자가 왔다. ‘귀하의 사항은 국토교통부로 이관됐습니다.’ 국토교통부? 스마트폰으로 뭐하는 곳인지 검색해봤다. 아, 건물·도로와 관련된 거라 그리로 간 건가. 뭔가 알아보려던 차에 상사가 일을 시켰다. 지시 사항을 해결하고 나니 업무 보고가 시작됐고 그러다 몇 달이 훅 가버렸다. 소소한 개인사가 이어지면서 주말도 바빴다. 그리고 A는 소시민적이게도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마도 안전처는 일을 잘 처리하기 위해 ‘적확한 관할’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다들 성실하게 일했을 거고 정해진 과정을 밟았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시민 A가 소시민 A로 되돌아간 건 아쉬운 대목이다. 안전처도 자발적 시민을 하나 잃었다.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땐 두 개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관료의 시계’와 ‘시민의 시계’. 두 시계가 똑같이 흐르는 것이 정부의 목표겠으나 두 시계는 때론 거꾸로 흐르고 때론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른다. A와 안전처의 사례처럼.

강인식 사회부문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