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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코드 ‘노숙자닷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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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무선 인터넷을 이용하는 밀레니엄 세대 노상생활자들이 ‘호보 문화’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에는 집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는 청년 세대가 수만 명에 달한다. 그들은 노상생활자가 IT를 이용하는 방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는 레딧(이용자가 기사를 올리는 소셜 뉴스 커뮤니티)에서 헉스타로 불린다. 회원 수 1만 명에 가까운 하위 그룹 ‘방랑자(vagabond)’의 관리자다. 이곳에선 회원 다수가 ‘노숙자(homeless)’를 자처하며 노하우와 스토리를 교환한다. ‘도로와 철도(the road and the rails)’ 상에선 그냥 허크다. 기자와 휴대전화 통화를 2번이나 하고도 실명을 밝히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내가 ‘노숙자 생활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그건 오해”라고 허크가 말했다. 그는 15년 넘게 방랑 생활을 했고 18세부터 기차 무임승차와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나는 떠돌이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래도 굳이 내가 풍찬노숙하는 노숙자가 되기로 했다고 말해야겠다면 정말로 ‘엿 먹어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경험했을 가능성도 있다. 최근 대불황으로 인한 압류의 쓰나미에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은 가구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 탓인지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노숙자의 모습이 갈수록 흔한 풍경이 되고 있다. 저가 휴대전화와 데이터 요금제가 흔해지면서 왕고참 노숙자들까지 집은 없어도 휴대전화는 갖고 있다. 4년 전 방랑생활을 시작한 한 위생병 출신은 ‘뉴크’라는 별명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처음 거리로 나서는 날부터 플립폰, 아이팟, 톰톰사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지도, 노트북을 들고 다녔다. 당시엔 무료 와이파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나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 치료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다).” 요즘엔 91년형 포드 픽업 트럭에서 생활하는 그가 덧붙였다. “지금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갖고 있으며 사방에 무료 와이파이가 깔려 있다.”

무선 인터넷의 증가로 떠돌이 생활이 한결 편해졌다고 뉴크는 말한다. 하지만 허크에게서 그와 같은 유랑 생활자들이 스마트폰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들으면서 네트워크에 연결되더라도 노숙자 생활이 결코 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휴대전화를 많이 꺼 두거나 비행기 탑승 모드로 설정해 놓는다”고 그가 말했다. “아주 짧은 시간만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하루에 1번, 또는 때때로 2~3일에 1번 간격으로 1시간가량씩 충전하기도 한다.” 허크와 같은 떠돌이들은 아주 잠깐씩만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구글 지도를 이용하거나 재빨리 전화 통화를 한 뒤 바로 끈다.”

일기예보가 가장 유용해

요즘 저가 휴대전화와 데이터 요금제가 흔해지면서 왕고참 노숙자들까지 집은 없어도 휴대전화는 갖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스마트폰이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노숙자에게 훨씬 더 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동중 스마트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상생활에선 편리한 정도지만 노숙자에게는 필수 기능이다. “거리에서 생활할 때는 날씨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고 길거리 타악기 연주자인 마이크 퀘인이 말했다. “어디선가 너무 추우면 어떻게든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갑자기 내리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피할 곳이 없을 때는 비가 전혀 반갑지 않다.”

집이라고 할 만한 고정된 거처 없이 생계를 꾸려나가려 할 경우 크레익스리스트 같은 단편적인 구직 사이트도 검색해야 한다. “미국에서 우리 같은 생활방식을 따르는 사람들은 지난 100년 동안엔 계절별 일정을 확인하며 농산물 시장과 영농 자재 상점에서 수소문하고, 신문에서 구인광고를 찾아보고, 가가호호 방문하는 방법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허크는 덧붙인다. “수천 명의 노상 생활자를 알지만 크레익스리스트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우리의 구직 관행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용도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퀘인은 “노상생활자에게 필수불가결한 자원으로 구글 지도, Couchsurfing.org(여행자 커뮤니티), 히치위키(HitchWiki, 히치하이킹 백과사전)를 꼽는다. 반면 뉴크는 여전히 스마트폰의 위력에 탄성을 올린다. “이젠 90년대의 라디오섀크(전자제품 매장)를 통째로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셈이다.”

구글에서 ‘호보 문화(hobo culture)’를 검색하면 쇠퇴와 관련된 결과가 많다(hobo는 ‘떠돌이 노동자’를 의미한다). 노동자 계급 떠돌이의 소멸, 방랑을 멈추지 않은 대공황 시대 떠돌이의 몰락, 아이오와주 브리트에서 전국호보대회 등으로 기념한 영웅적인 호보의 종말 등이다. 뉴스 매체 바이스는 2012년 ‘아메리칸 호보의 죽음(Death of the American Hobo)’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선보였다. 뉴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런 ‘노장들(graybeards)’이 퇴장한다. 그렇다고 그 뒤를 잇는 문화가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니다. 35세 이하의 떠돌이들이 나름의 호보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정보기술(IT)과 시대상이 뚜렷하게 반영된 문화다.

전에는 ‘호보 정글’과 ‘호보헤미아(hobohemias, 호보들의 커뮤니티)’가 있었지만 요즘의 호보(밀레니엄 세대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고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DumpsterMap.com(쓸 만한 물건을 찾기 좋은 쓰레기 컨테이너 지도), WiFiFreeSpot.com(무료 와이파이 연결 가능지역 리스트), On-Track-On-Line.com(철도 여행 정보 및 무선통신 주파수 정보) 등이 디지털 네트워크에 연결된 노숙자 커뮤니티 대다수에게 유용한 정보라고 허크는 말한다. 집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이트들이다. “2005년경 이전에는 이 모두가 단순히 입소문을 통해 알려졌다. 100여 년에 걸친 관행이었다.”

허크는 새 호보 코드를 개발 중이다. 노숙자와 관련된 신화 속에서 코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호보 문화를 다룬 책을 보면 호보의 코드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헛간 벽면에 그려진 얼굴은 그 안에서 하룻밤 신세를 져도 안전하다는 의미다. 병원 문에 그려진 카두케우스 지팡이(의술의 상징)는 의사가 노숙자를 진료해준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과거지사가 됐다. 허크는 코드를 완전히 개편해 디지털 네트워크 상의 호보에게 유용하게 만드는 프로젝트의 일원이다. ‘와이파이 네트워크와 무료 서비스’ 같은 자원의 심볼 세트를 새로 개발하는 작업을 한다. 심볼을 하나라도 공개할 수 있느냐고 묻자 허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호보 코드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면 문제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코드는 우리를 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우리 비밀의 힌트를 알아내면 그 다음은 뻔하다. 호보들이 이용할 수 있던 그 자원에 자물쇠가 채워지거나 아예 사라진다.”

호주 노숙자의 96% 휴대전화 있어

통념대로라면 인터넷과 무선 기술은 고립되고 배타적인 작은 섬에 우리 인간을 가둬 놓는다. 그것은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호보의 경우에는 정반대라고 퀘인은 말한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노숙자에게는 무리 지어 이동하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안전, 동행, 그리고 특히 디지털 서비스 측면의 규모의 경제 같은 문제에서다. “우리 중에는 무리 지어 이동하며 휴대전화 1대의 비용을 분담하는 사람이 많다”고 퀘인이 말했다.

퀘인 같은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인터넷 보급으로 동료 ‘여행자’를 찾기가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노상생활자들은 SquatThePlanet.com과 TravelersHQ.org 같은 사이트에서 그룹을 형성하고 스토리를 교환하고 모임을 주선한다.

건물의 무단거주자들(squatters)도 지식공유의 수단으로 무선 인터넷을 적극 받아들였다. 도시 부동산 개발에 맞서 자신의 거처를 지켜내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프랭크 모랄레스는 현재 뉴욕의 무단거주자 옹호단체 C-스콰트의 운동가다. 성직자 출신으로 무단거주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버려진 채 허물어져 가는 건물의 내부를 손봐 생활 근거지로 만들고자 하는 뉴욕의 남녀 노숙자를 지원한다.

그러려면 무단거주자들은 오래 방치된 건물에 전기와 수도 같은 생활 편의시설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바로 그런 면에서 인터넷이 필수 불가결한 자원이 된다고 모랄레스 운동가는 말한다. 전에는 이런 노하우를 사람이 직접 전수했다(종종 하루 일정의 무단거주자 ‘노하우 설명회’를 통해). 지금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다.

“IT는 세계적으로 주거기반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많은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줬다”고 모랄레스가 말했다. 요즘엔 지원단체 운동가들이 대량 문자발송 기술 기반을 이용해 방치된 건물을 노숙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조율한다. 또한 이메일 리스트를 구축해 어떤 무단거주 건물이 위험한지를 파악해 공지하고 무단거주에 영향을 미치는 법규 관련 정보를 배포한다. 적극적인 노숙자들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이용해 조직적인 운동을 전개한다. 모랄레스 운동가에 따르면 “우리는 개인 그리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그냥 내버려 두면 폐허가 되고 말 건물의 점유를 지원해 주거를 창출할 도덕적 책무를 갖고 있다”는 믿음에서다.

미국에서 노숙자, 그리고 그들의 휴대전화 소유와 관련된 종합적인 조사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트렌드가 어떻게 싹텄는지 엿볼 수 있는 소규모 조사는 있다. 시드니대학의 한 조사에선 호주 노숙자의 96%가 휴대전화를 보유했다. 한편 보스턴 공중보건 대학의 키스 매키니스가 매사추세츠주의 고참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선 89%가 최소한 1대 이상의 무선 단말기를 보유했다(호주 전체의 휴대 단말기 보급률은 92%, 미국의 경우엔 90%다). 그러나 “노숙자의 실상을 정확히 말해주는 조사를 실시하기는 정말 어렵다”고 매키니스 연구원이 말했다. 예컨대 다리 아래 또는 숲 속에서 생활하는 정신이상 노숙자의 경우 필시 휴대전화를 소유할 가능성이 작고 “찾아내기 어려워 조사에 포함될 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매키니스 연구원이 지적하듯 휴대전화 소지자는 생존 그리고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보유한 셈이다. 번듯한 거처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더 넓은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아무 수치심도 갖지 않을 수 있지만 노숙자에게는 어딜 가나 보기 흉한 낙인이 따라 다닌다. “휴대전화가 있으면 자신의 노숙자 신분을 감출 수 있는 외적 정체성이 생긴다”고 매키니스 연구원이 설명한다. “휴대전화를 이용하면 전화를 받는 사람이나 거는 사람 모두 상대가 노숙자인지 모른다.”

허크 같은 사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무선 인터넷 단말기를 이용해 주거가 불안정한 자신의 삶을 자부심의 원천으로 홍보한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레딧의 주간 팟캐스트(인터넷에서 파일 형태로 내려받아 감상하는 콘텐트) ‘업보티드(Upvoted)’의 최근 방송에 자신을 비롯해 ‘방랑자’ 하위 그룹 멤버 여럿이 출연했다고 귀띔했다. 그 프로그램에선 그들이 낙오자가 아니라 주인공 대접을 받는다.

“나는 굶주리거나 구걸하거나 배수로에서 잠을 청하지 않고 노숙 생활을 하는 길을 찾았다”고 그가 말했다. “나는 프로 노상생활자가 됐다. 이 같은 생활방식에 대단히 만족한다.”

글=벳시 아이작슨 뉴스위크 기자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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