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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저렇게 소리 지르고 싸워도 국회의원들은 안 혼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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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12일 오후 2시30분 국회 본회의장 4층 방청석. 5분 만에 달랑 법안 3건을 처리하고 난 뒤 여야 의원들이 고성으로 막말을 주고받는 걸 지켜보던 한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물었다. “저렇게 소리 지르고 싸워도 국회의원은 안 혼나요?”

교사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겸연쩍은 웃음만 지었다.

방청석에는 서울로 1박2일 수학여행을 온 충남 대관초등학교 6학년 학생 67명, 현장학습차 국회를 찾은 동두천 소요초등학교 5·6학년 학생 33명 등 100명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국회 견학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오후 2시25분쯤 학생들이 회의장에 들어섰을 때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이 단상에 나와 의사진행발언을 하고 있었다. 새누리당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한다는 문구를 국회 규칙안에 명시하는 데 반대하자 야당이 소득세법·지방재정법·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외 나머지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는 상황을 ‘발목잡기’라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민 의원이 “국회 상황을 국민들께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따져 묻자 야당 의석이 들썩였다.

초등학생 100명이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의원들의 막말 공방을 보고 있다. [김경희 기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새누리당은 약속이나 지켜” “뻔뻔스럽다”고 소리치기 시작하자 새누리당은 “조용히 해” “창피한 줄 알아”라고 맞고함을 질렀다. 처음엔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던 학생들의 얼굴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급기야 본회의장에 들어온 지 15분 만인 오후 2시40분쯤 인솔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당초 30분 정도 본회의를 관람할 예정이었지만 피하듯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 듯했다.

 학생들의 감상소감은 솔직했다. 대관초 6학년 김예진양은 “국회는 차분하게 법을 만드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의원들이 막 소리지르면서 싸우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최필규군도 “진짜 진심으로 싸우는 것 같았다. 무섭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저렇게 싸우고 난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 일은 다른 데 가서 하는 거냐?”고 묻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관초등생들의 국회 견학을 주선한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충남 보령-서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 의원은 “방청석에서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뒤통수가 화끈거려서 난 큰소리 한 번 안 냈다”며 “어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아이들한테 미안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고성이 오갈 수도 있는 거지만 국회에 처음 온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었다”며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직접 사과했다”고 덧붙였다.

 학교로 돌아간 학생들은 도덕시간에 다른 사람의 말은 경청해야 한다고 배울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 싫다고 막말을 내뱉거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던 국회의원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날 소요초의 한 여교사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장학습차 왔는데, 학생들이 국회의 실상을 제대로 본 거죠, 뭐.”

김경희 정치국제부문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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