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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문가는 친중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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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남북 관계와 국내 북한 연구자의 몸값 사이엔 어떤 함수 관계가 있을까. 관계가 호전되면 진보 진영에 속하는 전문가의 주가가 오른다.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세미나 참석도 잦다. 때를 잘 만나면 월 1000만원 수입도 가능하다고 한다. 반대로 관계가 경색되면 찾는 곳이 없어지면서 시세가 떨어진다. 월 100만원 수입 올리기도 어렵다.

 국제 관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한·일 관계가 나빠지면 양국 우호를 강조하던 지일파(知日派) 인사는 ‘잠수를 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활동이 뜸하다.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다 보니 양심 있는 지한파(知韓派)는 꼬리를 감췄다. 대신 혐한파(嫌韓派)의 한국 때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한국을 두들길수록 돈을 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한국 욕보이기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란다.

 국내 중국 전문가의 상황은 어떨까. 박근혜-시진핑(習近平) 시기 들어 한·중 관계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순항 중이다. 밀월기에 가깝다. 또 불어나는 중국의 몸집에 정비례해 중국 전문가를 찾는 국내 수요 또한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 전문가로선 휘파람이라도 불어야 하나. 그에 앞서 귀 기울여야 할 따끔한 충고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달 서울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에선 ‘한·중 관계의 미래’를 주제로 2015년도 현대중국학회(회장 김태호) 춘계 학술회의가 열렸다. 정상기 전 대만 주재 대사는 축사에서 ‘왜 국내 중국 연구 학자들이 친중적(親中的)이란 평을 듣는가’의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게 “중국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중국의 입장을 해석해서 전달하는 ‘통역’ 차원의 연구가 많기 때문이 아닌가, 또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단편적 또는 중국적 분석이 많아서가 아닌가”하는 지적과 함께였다.

 이 문제 제기는 이날의 주제가 아니었음에도 마치 가장 중요한 주제처럼 회의에 참가한 중국 연구자들의 마음에서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국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나름대로의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하나는 어떤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무엇이냐에 대한 문의를 받고 이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한 게 친중국이란 말을 낳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편성이 떨어지는 일부 중국의 주장이 어떤 배경에서 나오고 있는가를 설명하다 보면 어느새 친중국이란 이름표가 붙는다는 것이다.

 필자 또한 십분 동감한다. 먼저 첫 번째 경우와 관련해서다. 중국 전문가는 중국의 의중이 무엇이냐에 대한 설명을 가장 많이 요구받는다. 이는 알 듯 모를 듯 애매한 표현이 많은 중국식 화법(話法)에 기인하는 바 크다. 예를 들어 시진핑 시기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신형대국관계를 구축하겠다며 미국은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곧바로 해석할 수 있는 외국인 전문가는 거의 없다. ‘신형(新型)’은 무슨 뜻이고 중국이 말하는 ‘핵심이익’은 무얼 말하는지 등. 중국 당국의 주장과 학자의 견해, 중화권 언론의 해석 등을 두루 종합해야 겨우 그림이 그려진다. 그렇게 결코 쉽지 않게 알게 된 중국의 입장을 침을 튀겨 설명하다 보면 돌아오는 반응은 뜻밖에도 “당신, 중국 대변인이냐”는 비아냥이기 십상이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필자가 10여 년 전 베이징 특파원 때 겪었던 경험이 생각난다. 당시 본지 자회사와 중국 회사 간의 협력을 중재한 적이 있는데 “너, 중국 사람 다 됐네. 네 월급이 어디서 나오는 줄 아느냐”는 말을 들었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중국의 입장을 최대한 설명한 게 회사 관계자의 반감을 산 것이다. 듣는 쪽인 우리 측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다. 국내 중국 연구자가 중국 정부의 속내를 풀이할 때는 단순 ‘통역’ 차원이 아니라 듣는 이의 입장도 십분 감안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이 교수가 두 번째 거론한 이유도 상당히 일리가 있다. 중국의 견해 중 일부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규범과는 거리가 있어 자칫 중국의 입장을 자세히 설명하다 보면 반감을 사기 쉽다는 주장이다. 이를테면 중국은 자신의 국정(國情)에 기초해 공산당 일당에 의한 전정(專政)을 절대적으로 옹호한다.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또 민주(民主)에 대한 해석 역시 우리와 큰 차이가 난다. 바로 이 같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 판단과 다른 중국의 주장이 어떤 배경 속에서 나오게 됐는가를 설명하다 보면 ‘저 사람은 친중국이라 저런 말을 한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물론 이에 대해 많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친중국’이 꼭 나쁜 것이냐, 혹시 ‘중국 전문가는 친중국’ 운운하는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이미 좋지 않은 편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 등 항변할 여지는 많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그리 생산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현재 국내 중국 연구자에게 필요한 건 ‘중국 전문가는 친중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말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자세일 것이다. 혹시 그동안 중국에 대한 설명이 ‘통역’ 수준에 머물렀던 건 아닌지 등 자신의 연구와 풀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

글=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aseo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