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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현대차의 위기는 길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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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강성노조와 고임금 구조가 한국 자동차산업 위기의 진정한 주범일까. 최근 제너럴모터스(GM)가 아시아 생산거점을 인도로 옮길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강성노조가 외국인 투자자들을 내쫓는다”며 매우 치는 분위기다. 그런가 하면 광주에선 완성차 공장만 오면 ‘반값 임금’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물론 강성노조는 우리 생산 경쟁력을 훅 떨어뜨리는 주 요인이다. 개혁은 필요하다.

 한데 요즘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단순한 생산성 위기가 아니다. 어떤 위기든 한 개의 원인으로 생기지 않는다. 진짜 걱정은 미국·유럽·일본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구조조정을 끝내고 체력을 회복했다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세계 5위권.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5~6년 사이에 이룬 성과다. 그사이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한꺼번에 파산과 매각, 공장철수 등 전대미문의 구조조정을 벌였다.

 현대차는 이 틈에 비약적인 ‘틈새 발전’을 이뤘다. 한국GM도 본사의 파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중소형 모델의 공급기지가 됐다. 한데 이제 세계 자동차 업계의 비정상은 정상화됐다. “좋은 시절 다 갔다”는 업계의 한탄은 그래서 나온다. ‘진검승부’에선 힘세고 기술 좋고 운 좋은 자가 이긴다.

 문제는 우리 경쟁력이 대충 훑어봐도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거다. 우선 구조적으로 판을 크게 벌이기에는 한 끗 모자라는 내수시장 규모. 지난해 자동차 내수 규모는 166만 대다. 일본은 450만 대, 시장점유율 40%대인 도요타 판매량만 180만 대다. 어떤 기업이든 본거지에서 받쳐줘야 글로벌 성장도 가능하다. 우리 자동차산업은 현대·기아차가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내수의 80% 전후를 쓸어가면서 글로벌 성장 기반을 마련했었다. 한데 지난해엔 내수점유율이 60%대로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또 다른 난제는 “추격 성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잘하는 글로벌 기업을 벤치마킹해 추격해왔는데 이젠 그럴 수 없는 단계라는 얘기다. 메이커마다 자율운행·스마트 자동차 등 다양한 기술과 전기차·하이브리드·수소연료전지차 등 다양한 내연기관을 내놓고 있다. 이젠 선도기술로 치고 나가지 않으면 승산 없는 게임의 장이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생산현장의 저효율은 또 ‘세계적 수준’이다. 현대차 국내 공장의 시간당 임금은 미국 공장보다 두 배 가까이 높고, 시간당 생산성은 절반 정도로 낮다. 일본 도요타는 단일 차종 10만 대만 팔면 이익이 난다는데, 현대차는 20만 대 이상 팔아야 한다. 빈약한 노사 간 신뢰자산은 경쟁력을 계속 갉아먹는다.

 게다가 정부는 ‘무전략주의’다. 자동차 내연기관이 바뀌면 인프라도 이를 받쳐줘야 한다. 일본의 경우 업계는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정부는 이미 2년 전에 ‘수소사회(Hydrogen Society)’를 표방하면서 로드맵을 내놓고 인프라 투자도 시작했다. 일본에선 2020년 수소경제가 시작될 거란다. 반면 현대차는 수소차 전략을 선포했는데 정부는 무반응이다. 연료를 공급할 스테이션도 없는데 수소차가 어떻게 돌아다니나.

 내수시장 활력은 떨어졌고, 소비자들 사이에 국산차 애용이 애국이라는 생각은 희미해졌다. 지난해 이미 20만 대에 육박하는 수입차가 팔렸고, 앞으로는 더 늘어날 거다. 어느 한 곳도 밝은 소식은 없다. 글로벌 기업의 공장 전략은 무조건 ‘수익 극대화’다. 강성노조가 아니라도 한국 시장은 이렇게 생산·판매기지로서의 매력을 잃었다. GM이 경제 활력 높고 자동차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인도로 가는 건 기업전략으로 보면 당연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말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 긴장하라.” 한국 자동차산업은 기로에 섰다. 이럴 땐 ‘네 탓’ 공방보다 제대로 현실을 직시하고 머리를 모아 대책을 강구하는 게 먼저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