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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국화꽃」을 피워내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LA올림픽에 출전하고 있는 우리선수들의 성과를 보면 의외의 결과가 적지 않다는 인상이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가하면 메달후보로 믿었던 선수들이 대부분 예선에서 탈락하거나 성적이 부진했다. 오히려 이름 있는 선수들에 가려 명함도 내놓지 못하던 무명의 선수들이 당당히 메달을 따내고 만다.
그것이 승부의 세계에 흔히 있는 의외성이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겠으나 바로 그 의의성이야 말로 스포츠를 즐기는 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의외성은 승부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이며 관전자에게는 예상을 뒤엎는 드릴과 재미를 주는 요체다.
프리올림픽에서 탈락했던 우리 여자농구가 올림픽 대전에서는 캐나다·유고·호주·중공을 누르고 당당히 결승에 진출, 은메달을 획득했다.
전문가가 아니면 그 이름도 모를 정도로 무명선수였던 레승림의 김원기선수와 유도의 안병량선수가 금메달을, 김재엽·황정오선수가 은메달을 따냈다. 이들이 이룩한 의외의 승리가 국민들을 더욱 환호하고 열광케 한 것이다. 이들이 승리의 기쁨을 웃음에 앞서 눈물로 맞도록 한 것은 자기도 미처 기대못했던 바로 이 의외성 때문은 아닐지.
그러나 이 의외의 결과를 우연이나 돌발사태와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들의 승리의 의외성 이면에는 필연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투기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보인 선수들의 이면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우선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가정 출신이라는 점이다.
라면이나·꽁보리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돼지고기 볶음이라도 실컷 한번 먹고 싶다』는 그런 가난과 역경속에서 이를 극복해 보겠다는 의지로 투혼을 길러온 것이다. 돈들지 않고 맨몸으로 부딪쳐 싸워볼 수 있는 것이 투기종목이므로 이들이 유도나 권투·레슬링을 선택한 것은 찌든 가정 형편과 결코 무관치 않다. 간을 앓고 말뼈가 상할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수년간씩 말없이 견뎌내면서 남모르게 갈고 닦았던 체력과 기량의 발휘로 쟁취된 영광을 남들이 보기에는 의외의 행운이니 할지 몰라도 본인들에게는 피눈물 나는 각고의 필연적인 결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선수들의 가족적인 화목 또한 승리의 원동력이였다는 생각이다. TV에 비친 가족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구김살이 없고 밝았다는 것은 퍽 인상적이다. 편모·엄시하에서 형제들과 어려운 살림을 하면서도 표정이 건강하고 밝은 것은 가정의 화목과 우애를 입증해준다. 가난과 역경은 가족들의 단합과 협력없이 극복될 수 없을 것이며 가족적 응집력없이 선수의 투지와 기량이 연마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천둥과 번개치는 무더운 여름의 시련이「한송이 국화꽃」을 피워내듯이 실의와 좌절을 이겨내려는 개인적 의지와 이를 뒷받침해준 가정적 화목이 이들에게 영광을 가져다 준 원동력의 하나인 것이다.
의지와 투혼만으로 다는 아니다. 그들에게는 기량을 연마시켜준 숨은 지도자가 있었던 것이다. 첫 출발에서부터 길을 잡아준 중·고교시절의 은사와 감독·코치의 힘은 본인의 노력 못지 않게 평가받을만하다.
특히 김원기선수를 길러낸 함평화고 최학수·윤정부코치의 숨은 공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전라도 벽촌 구석 학교에 레슬링부를 만들어 묵묵히 일하면서 김원기, 김영남, 이연익 등 3명의 LA파견선수를 비롯, 지난 8년동안 1백여명의 대표급 선수를 배출해냈다. 벽촌 실업학교에서 오직 고향 후배들의 먼 훗날의 영광을 위해 밑거름 노릇을 해온 이들이야말로 숨은 애국자요, 실로 우리국가의 저력이다. 이른바 지도자라는 사람이 애국·애족을 전매특허나 낸 듯이 떠들고 있을 때 이들은 숨어서 소리 없이 오늘의 메달리스트들을 착실히 길러내 한국의 명예를 세계에 펼치도록 한 것이다.
국토의 한구석 산골에서 조국의 지주를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쌓아가는 말없는 일꾼들이 존경받고 장려돼야 할 참된 애국자요, 국민적 사표가 아니겠는가. 이들의 푸른 꿈이 자라고 있는 함평고교 레슬링부가 돈 없는 학생들의 학업중단으로 해체위기에 놓여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픈 일이다. 천문학적 숫자의 현금들이 이른바 지도급 인사의 수중에서 투기자금으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것은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전례라면 항변 할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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