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 핵심 배후 북한 김격식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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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격식

천안함 폭침 사건 핵심 배후로 지목됐던 김격식 북한 전 인민무력부장이 10일 77세로 사망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책임을 묻는 5·24 대북제재 시행 5주년을 2주 앞두고서다. 군복 왼쪽 가슴팍에 약식 훈장(약장)을 45개 이상 달았던 그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천안함이 폭침됐을 당시 서부전선 최전방을 담당하는 인민군 4군단장이었다. 그는 김영철 군 정찰총국장과 함께 천안함 폭침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됐다.

 한·미 정보 당국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9년 2월 그를 4군단장에 임명하면서 “강등되는 게 아니니 잘하고 돌아오라”는 격려를 했다고 한다. 이후 2010년 3월엔 천안함 폭침이, 그해 11월 23일엔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김격식은 전범으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당하기도 했다. 비정부기구(NGO)인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가 연평도 포격 주동 혐의로 그와 김정일·김정은 부자를 전범으로 처벌해 달라고 요청하면서다.

 김격식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3대 권력의 연결고리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위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격식 동지와 나는 격식 없는 사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던 최측근 군부 인사다. 북한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항일 빨치산 출신은 아니지만 소작계급으로 시작해 북한군에서 야전 사령관으로 잔뼈가 굵었다.

 1938년 함경남도 정평군 출생인 김격식은 김일성군사종합대를 졸업했고 80년대 말부터 군단장으로 일하며 김일성훈장·김정일훈장을 받았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집권 후 인민무력부장에 오른 그는 2013년엔 군 총참모장으로, 같은 해 9월엔 군단장으로 물러섰다. 그러나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지난해 1월 말 김정은과 함께 항공육전병 야간훈련을 참관하며 핵심 군부 원로로 활동했다. 이때가 김격식이 관영매체에 모습을 드러낸 마지막이다.

 노동신문은 11일자 4면에 그의 컬러 사진과 함께 부고를 전하며 “애석하게도 사망했다”는 표현을 썼다. 김정은 이외에 노동신문에 단독 컬러 인물 사진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북한이 밝힌 사인은 ‘암성중독에 의한 급성 호흡부전’이었다. 북한어사전에 따르면 암성(癌性), 즉 암으로 인한 급성 호흡 마비가 와서 자연사했다는 뜻이다. 익명을 원한 통일부 당국자는 “사고를 가장한 위장 처형이 아닌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서강대 김영수(북한정치) 교수는 “최근 구부정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등 건강 이상 신호가 감지됐다”며 “사진과 함께 4면 톱으로 배치한 부고는 그에 대한 예우”라고 설명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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