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농구 올림픽사상 첫 은메달|세게도전 20년만의 쾌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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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 여자농구의 은메달은 한국스포츠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서 이룬 찬연한 성과. 그것도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것은 한국여자농구의 새 장을 연 획기적인 쾌거인 셈이다.
한국여자농구가 국제무대에 첫선을 보이기는 지난64년 제4회세계선수권대회(페루)에 출전하면서. 그러나 한국은 이대회에서 8위에 머물러 빛을보지 못했고 67년 제5회선수권대회 (체코)에서 2위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 세계의 이목을 모으기 시작했다. 60년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박신자·현신용보증기금 감독)의 발군의 활약에 힘입은 장거이기도 했다.
당시만해도 여자농구의 인기는 절대적인 것이어서 「딸을 낳으면 농구를 시켜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이후 71년 브라질세계선수권대회(한국4위), 75년 콜롬비아 세계선수권대회 (5위)를 거치면서 한국여자농구는 줄곧 아시아의 정상자리를 고수하면서도 두터운 세계의 벽에 번번이 막혀 중위권을 맴돌 따름이었다.
중공의 세계무대진출은 한국의 부진을 부채질하게 됐고 깊은 잠에 빠진 여자농구는 좀체로 헤어나질 못했다. 74년 제7회 아시안게임(이란 데헤란)에 첫 모습을 나타낸 중공에 한국은 아시아정상자리마저 내줘야 했다. 노도처럼 밀려오는 중공의 잠재력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박찬숙의 등장은 몸살을 앓고있던 당시의 한국여자농구계로선 절대절명의 캄프르주사나 다름없었다.
박의 등장으로 한국여자농구는 승승장구,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 (ABC) 에서 3연승 (7,8,9회)을 구가했는가하면 79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8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미국에이어 준우승, 가능성을 엿보이게 했다. 제9회아시안게임 (인도 뉴델리)에서 우승한 중공은 이후 상승세를 타기시작, 지난5월의 프리올림픽(쿠바)에서는 72-35로 무려37점차로 압승을 거두기까지 최근의 국제대회에서 한국에 4연승을 마크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번 LA올림픽에서 중공의 연승을 저지했다.
따라서 한국여자농구의 은메달이 주는 교훈은 값질수밖에 없다.
그것은 여자농구가 세계도전 22년만에 정상문턱에 섰다는 감격이상으로 한국여자농구의 긍지와 자부심을 크게 일깨워주고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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