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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승희의 시시각각

김무성·문재인, 당신들의 차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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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박승희 기자 중앙일보 중앙선데이 국장
박승희
정치부장

시간 뒤틀기엔 짜릿함이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거나, 지금의 이슈로 과거를 보면 요즘 말로 ‘심쿵’하곤 한다. 뒤늦게 발견된 진실은 놀라움도 주지만 불편함과 당혹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오늘 내가 하는 말과 쓰는 글도 그렇다. 5년 뒤나 10년 뒤 누군가가 들춰낼 수 있다면 내일의 말과 글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잘’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다.

 2005년 12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민연금 개혁 등 우리 사회의 장기 미해결 과제는 과거 정권들이 지지도 하락을 이유로 기피해 암덩어리처럼 커진 사안들이다. 연금 재정적자가 하루하루 쌓이고 있다. 나야 어영부영 대통령을 마치고 나가면 그만일 수도 있지만 다음 대통령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달 뒤인 2006년 1월 25일 신년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간 지 2년 반이나 지났지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한데도 모두가 남의 일처럼 내버려 두고 있다”고 한탄했다. 아무래도 어영부영할 수가 없었던 게다. 그해 2월 노 대통령은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해 연금 개혁이란 특명을 맡겼다. 우여곡절 끝에 유 장관은 보험료율을 9%에서 12.9%로 인상하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2007년 4월 이 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유 장관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3개월 뒤 국회는 새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보험료율을 9%로 유지하는 대신 급여대체율(받는 연금의 비율, 2015년엔 소득대체율로 용어가 바뀐다)을 60%에서 2008년 50%로, 2028년 40%로 내린다는 게 골자였다.

 8년이 지난 지금 공무원연금 개혁 때문에 다시 나라는 시끄럽다. 대통령은 박근혜로 바뀌었다. 하지만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톤에서 박 대통령은 8년 전의 노무현과 닮았다.

 “공무원연금을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 이대로 방치하면 엄청난 빚을 다음 세대에 떠넘기게 될 것이다.”(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

 “이번에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매일 소리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하고 후손들에게도 빚을 지우게 된다.”(4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보수 진영의 대통령이든 진보 진영의 대통령이든 다를 게 없다. 나라 살림을 책임지다 보면 ‘내 대(代)에서 폭탄 돌리기를 멈추고, 폭탄의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구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의도는 달라졌다. 여야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돌연 국민연금을 끼워 넣었다. 8년 전 60%→50%→40%로 내리기로 했던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기로 했다. 개혁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당시 여당(열린우리당)이면서 연금 개혁의 당위성 편에 섰던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야당이 된 그들에게 속사정은 있다. “공무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를 500통 가까이 받았다”는 하소연에서 공무원단체로부터 받은 압력을 짐작할 수 있다. 공무원연금을 깎는 대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벌충하는 ‘잔수’가 등장한 배경이다.

 뒤틀어지고 구겨진 개혁안은 다시 여의도 주변을 헤매고 있다. 여당에서 야당이 되자 공무원들의 표 속으로 돌연 숨어버린 야당, 내년 총선과 그 다음 대선을 앞두고 공무원들의 미움을 사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간이 작아진 여당은 시곗바늘만 살짝 늦춰놓고 폭탄 돌리기를 재개할 모양이다.

 연금 개혁은 노무현의 업적도, 박근혜의 업적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보수나, 진보의 어젠다도 아니다. 지금, 우리 세대에서 해체해야 그나마 아들딸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작아지는 폭탄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8년 전 연금 개혁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복기해야 한다. 그게 미래 권력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양심’이고 ‘책임감’이다.

박승희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