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또다른 주역들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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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2002년 월드컵은 태극전사와 히딩크 감독만을 국민적 스타로 만든 건 아니었다. 붉은 물결의 응원 속에서 젊은이들은 드넓은 '광장 문화'를 몸으로 겪었고, 이는 또 다른 문화적 스타를 탄생시키는 토양이 됐다. 붉은 함성을 이끈 주역들, 혹은 그 수혜자들의 지나간 1년과 현재를 살펴본다.

▶국민 가수로 부상한 윤도현

월드컵 이전만 해도 윤도현(31)은 젊은 매니어층한테만 인기를 끌던 평범한 록가수였다. 그러나 "초등학생부터 할머니까지 이젠 다 알아본다"는 그의 말처럼 '오 필승 코리아'란 노래 한 곡으로 그는 단숨에 국민적 가수로 자리매김됐다. 지난해 초 '붉은 악마'로부터 "다 함께 부를 만한 응원가가 없다.

하나 만들어보자"는 요청을 받은 게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줬다.'오 필승 코리아'는 프로축구 부천 SK의 서포터스 '헤르메스'가 구전 가요 비슷하게 부르던 응원가에 경쾌하고 박진감 있는 리듬을 넣어 새롭게 만들었다.

'오 필승 코리아'는 열렬한 인기를 얻었지만 따로 음반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을 얻을 것이라 생각지 못해 월드컵 공식 음반에는 윤도현의 또 다른 응원가인 '아리랑'만 실었고, '오 필승 코리아'는 인디밴드 크라잉 넛의 곡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전 국민의 응원가로 폭발적 인기를 얻자 윤도현 밴드는 부랴부랴 '오 필승 코리아' 앨범을 만들어 2천2장만 한정 발매했다.

월드컵 이후 광고 섭외가 물 밀듯 밀려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고, 윤도현 밴드의 라이브 앨범은 음반업계가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40만장이 넘게 팔리는 히트를 기록했다. 윤도현씨는 최근 방송 출연을 자제하면서 새 앨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조용히 변화 중인 붉은 악마

한국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는 지금 발전적 해체 과정을 겪고 있다. 월드컵 이후 불쑥 성장한 이 젊은 집단을 때론 정치적으로,때론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발전적 해체란 회장 중심의 조직 구조를 '대의원 체제'의 집단 지도 체제로 변경함을 뜻한다. 붉은악마 가맹단체의 대표자들에게 대의원 자격이 주어진다. 사무실은 폐지되고 그 자리엔 문화방이 들어설 예정이다. 대학로에 75평 공간으로 마련될 문화방엔 축구관련 각종 비디오와 서적,자료 등을 구비해 미래의 축구 박물관으로 키워갈 계획이다.

▶월드컵이 배출한 대중 스타

'미스 월드컵'으로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던 미나(본명 심민아.30)는 월드컵 이후 가수로 데뷔했다. 한국-이탈리아의 16강전이 열린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아슬아슬한 패션과 열성적인 응원으로 외신 사진 기자들에게 포착된 것이 계기가 됐다.이후 공개 오디션을 거쳐 지난해 10월 앨범을 발매해 '꿈은 이루어진다'와 '전화 받어'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27)씨도 월드컵을 통해 연예계에 진출한 사례다. 거리 응원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응원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연예 기획자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각종 연예 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터와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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