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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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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한 지인 남성은 아내가 “당신은 왜 아들을 주워온 자식처럼 대하느냐”고 물을 때까지 자신이 어떤 아빠였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아내 말을 들은 후 자기 행동을 관찰했더니 아들에게 무심한 상태로 화난 말투를 뱉곤 했다. 딸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와 차이가 컸다. 최근에 또 다른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들을 볼 때마다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그럴 때면 부자 관계가 원초적 경쟁 관계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그 아버지들도 자기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을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주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요즈음 아버지들이 이전 세대와는 다른 아버지가 되기 위해 감정과 행동을 알아차리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엄마와 긴밀한 애착관계에 있던 아들이 아버지 세계로 옮겨오는 시기는 대여섯 살 무렵이다. 그때 아들은 아버지가 곁에 있어 주기를, 아버지와 함께 놀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심리학자 짐 허조그는 전 세계 아버지들이 아이와 놀아줄 때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놀이 패턴을 밝혀내어 ‘흥분시키기와 다잡기’라고 명명했다. 아들과 뒤엉켜 소란스럽게 놀다가도 아버지는 일정한 시점에서 열기를 가라앉히며 아이의 마음을 다잡기 시작한다. 놀이 속에서 아이가 공격할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해주고, 공격 에너지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가 격정과 공격성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와 놀아줄 때 아버지는 경쟁심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레슬링 같은 경기를 할 때 놀이는 대체로 아이가 ‘항복’을 외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아버지가 항상 이겨서는 안 된다. 아들에게 승리하기만 하는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속에 패배감을 심어준다. 아버지가 매번 져주어서도 안 된다. 그러면 아이의 유아적 전능감이 깨어질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들과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승리했을 때의 겸손과 패배했을 때의 용기를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가 경쟁심을 알아차리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할 때 최종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은 삶의 모델이다. 아버지를 보고 따라 하면서 성장하는 아들은 마음으로부터 아버지를 존경하고 싶어한다. 존경할 수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자존감이 된다. 만약 아들이 갖추었으면 하는 성품이나 태도가 있다면 아버지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면 된다. 형제가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이가 되기 바란다면 아버지가 자기 음식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