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람쥐 쳇바퀴 돌듯…교육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방향 감각 잃고 「근본」엔 손 못대
『망건(망건) 쓰자 파장』이란 속담이 있다.
수단과 절차에 매여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때를 놓치고 정작 중요한 소기의 목적을 그르치는 인순·주저의 풍자다.
우리의 교육제도 개혁이란걸 보고 있노라면 요장은 벌써 파할 때가 가까와 오는데도 망건만 주무르고 있는 못난 서생의 형상처럼 안타깝기 작이 없다.
개혁을 한다면서 기껏 거론되는 것이 논술시험을 하느냐 마느냐, 내신제를 확대할까 말까,체력장은 존속시킬 것인가 페지할 것인가 하는 수단과 방법상의 문제들이다.
거기다 한가지 보탠 것이 있다면 육성회비 현실화·기부금의 제도화와 같은 돈 거두는 아이디어다.
교육이 무엇을 해야하고 어떤 길로 가야만 할것인가하는 목표와 방향은 잊혀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교육은 갈팡질팡 실패만 거듭하고 개혁이 곧 시행 착오라는 말과 동의어로 인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입시제도 하나만 보자.
대입학력고사와 고교내신성적만으로 전형하는 현행제도가 81년에 채택된 이후 네번의 입시를 치르면서 골격은 그대로라고 하지만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해마다 다른 방법으로 응시를 해야했다.
대학별 지원성적 분포를 공개하고 대학간 복수지원을 허용했다가 다음해에는 이를 모두 없애고 대학내 학료간에 복수지망을 허용했으며 내년에는 또 내신등급간 점수격차를 줄이기로했다.
길잃은 사람이 우왕좌왕하듯 문교당국은 해마다 조금씩이라도 바꾸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가장 자주 바뀐 제도가 입시제도이지만 교육이 지향해야할 방향의 설정과는 먼 거리에서 개혁이란 이름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대학별시험(45년)에서 국가자격 고사추가(54년)-국가고사폐지·내신주가(55년) 또다시 국가 고사체(62년)-대학별 시험제(64년), 대입예비고사제(69년)-학력고사·내신합산제(81년)로 개미쳇 바퀴돌 듯 숨가쁘게 돌았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했는데 어찌 이렇게도 자주 정책이 바뀌느냐는 문제가 그때마다 제기됐지만 막무가내다.
정권이 바뀌고 체제가 달라질 때마다 거창한 구호와 함께 교육제도부터 뜯어고친다.
이런 개혁일수록 발등에 떨어진 정치·사회문제의 수습을 위한것이었지 미래를 향한 방향의 제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렇게 오도된 개혁이 정권이나 교육 어느편을 위해서도 신통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증명된지도 오래다.
그런데도 과거의 실패를 거울 삼지 못하고 늘 실패하는 개혁만 되풀이한다.
어쩌자는 노릇인가.
오늘날 세계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기술혁신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반도체·유전공학·광통신·신소재 등 하루가 다른 기술의 진보는 미래문명의 전망조차 어렵게 하는 요즘이다.
이 대열에서 낙오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주체로 살아남기가 어러워 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동안 우리는 외국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개량해 냉장고도 만들고 TV도 만들어 생산성도 높이고 경제적 발전도 이만큼 이루었다.
그러나 이제 문제가 달라졌다.
이제는 우리가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더이상 나아갈수 없게됐다.
그래서 시급한 것은 두뇌집약적이고 창조적인 첨단기술을 자체적으로 창출해 낼 수 있는 우수한 과학자의 양성이다.
과학기술은 『투자한지 10년이 지나야 그 성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시기를 놓친 감조차 없지 않다.
우리나라가 올해 당장 필요로 하는 석사·박사수준의 과학두뇌는 2만여명이나 되지만 활용 가능 인원은 1만7천명에 불과하다.
이같은 기술인력의 불균형 상태가 방치된다면 오는 91년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과학두뇌는 7만7천9백명으로 추계 되는데 비해 그 공급능력은 4만7천평에 지나지 않아 공급부족이 3만명을 넘게된다.
아무리 공장이 많이 들어서고 시설이 늘어난다 해도 고급 과학두뇌의 양성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그런 공장이나 시설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교육의 당면 목표와 방향은 명백하다.
고도산업 사회가 요구하는 인력의 공급이다.
지난해 대학신입생 정원을 보면 인문대 자연계의 비율이 5.5대 4.5로 인력수급의 전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올해는 56.7대 43.3으로 자연계의 비중비, 더욱 줄어들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우리교육의 방향 상실은 한눈에 드러난다.
이런 상태를 방치하다가는 기술인력 부족은 갈수록 심해져 결국은 국제 경쟁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파장을 맞게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1년에도 몇차례씩 거론되는 교육의 개혁이 대학생을 어떻게 뽑느냐하는 따위 지엽의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교육이 근본적으로 사회인력 수요의 충족이라면 사회발전에 따른 인력공급의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강구하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망건이 좀 비뚤어졌기로 요장에 늦어서야 되겠는가. 지엽의 교육개혁은 이제 그만두고 인력공급의 확실한 방안을 세우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