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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어에 경비가중…연안어업 「적자시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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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동해안의 7월은 오징어잡이 한철이다.
4, 5월 동지나해에서 산란을 마친 오징어떼가 난류를타고 북상, 독도·울릉도 근해에 어장을 형성하면 동해안의 크고 작은 항구는 방을 밝혀 흥청거리기 시작한다.
풍어가 드높은 만선귀항 어선들이 아침저녁 위판장에 산더미같은 생선을 쏟아놓고 각지서 모여든 거간꾼·잡일꾼들이 한데섞여 이를 돈으로 바꾸던 활기-.
그러나 올해 동해안 어느 항구에도 그런 활기와 신명은 사라졌다.
80년대들어 심각해지기 시작한 흉어가 이태째 더해가며 항구마다 고깃배의 발을묶어 놓고 어민들손에서 그물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각종 생선을 가공하는 크고작은 공장들도 원료난으로 문을 닫거나 쉰다.
선주도, 어부도, 잡일꾼도, 공장도 흉어의 깊은 시름에 잠겨 깨어날줄 모르는 동해안의 여름은 긴긴 삼복.
『벌써 열흘째 고기씨를 못봤소. 흉어, 흉어, 넌더리가납니다』

<배 70척이 낮잠>
주문진어협위판장 리어카꾼추원엽씨(55·주문진6리)는 『요즘 형편이 어떠냐』고 묻자 벌컥 화부터 냈다.
주문진위판장에서만 27년째리어카로 생선을 날라온 추씨는 하루 4천∼5천원 일거리도 구경 못한지가 열흘이란다.
생선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1백여척 오징어잡이 어선이 선적을 두고있는 묵호항엔 70여척이 항구에 닻을 내린채 낮잠이다.
『바다에 고기가 업청 줄었지요. 그렇다고 아주 없기는 하겠어요. 기름한방울 안나는나라에서 비싼 기름 버리고 잡아봐야 빚만 느니 고기를 잡을수도, 안잡을수도 없는것아닙니까.』
묵호선주협회 총무 조길환씨(52)는 요즘 동해안의 흉어는 자연과 인위의 합작흉어라고했다.
무제한으로 도입되는 뉴질랜드·북해도산오징어와 북양명태가 고기가 줄어 가뜩이나 쪼들리는 연안어업의 숨통을 죄고있다는 설명이다.
동해안어업의 퇴조는 연간어획고에서 쉽게 드러난다.
동해출장소가 집계한 어획고는 80년 14만4천8백96t이 83년에 9만9천1백71t으로 뚝 떨어졌다.
62년 40만t의 35%, 70년대 중반 25만t의 56%에 불과한 양이다.
올해는 1, 2월에 오징어어획량이 다소 늘었다지만 20일 현재 전체 어획량은 4만4천5백t으로 동해안 유사이래 흉어라던 지난해에 비해서도 8%가 줄었다.
『이상조류로 난 한류의 교류가 되지않기 때문입나다. 동해안은 요즘이 난기류인데 예년보다 2∼5도가 낮은 한류가 흐르니 어군이 형성될리가 없지요』
국립수산진흥원 주문진지원김용철자원실장(47)은 지난 겨울 이상한파가 걷히지 않고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대마도·제주·남해연안에 어군이 형성되는 것도 이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상조류→원거리 어장→조업기간 연장→출어경비 가중의 악순환이 동해안 어민들을 죄어 든다.
고기는 안잡히는데도 생선값은 내려간다.
오징어의 경우 지난해 1팬(8kg)당 1만1천∼1만2천원까지 홋가하던것이 원양오징어 대량유입으로 현재5천5백∼5천8백원선.
각국에서 2백해리 전관수역 선포로 어장을 잃은 원양어업을 보호하기위해 우리원양어선이 잡은 오징어의 국내소비는 불가피하다는 수산당국의 설득은 연안어민들의 분노만 사고있다.
「큰집살리려고 작은집은 죽여도 되느냐」는 항변.
원양오징어는 고기값하락과 함께 소비자들의 오징어에 대한 입맛을 망쳐놓았다고 어민들은 불평한다.

<오징어 제맛잃어>
운송기간이 길어 염분이밴 맛대가리없는 원양오징어가 국내소비시장에서 연안오징어로 둔갑,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잃으면서 정작 제맛을 지키는 연안오징어마저 외면당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올들어 부산항을 통해 입하된 원양오징어는 연안서 잡힌 오징어의 10배 가까운 2만여t.
지난4월 새마을중앙본부에서 열린 전국향토야시장에서 묵호는 연안오징어를 올렸다. 불티나게 팔려 하루만에 품절. 서둘러 다시 올린 오징어에 맛이 짠 원양 오징어가 섞었다. 축당 2만원에 팔린 뉴질랜드산 오징어는 소비자의 항의가 빗발쳐 환불소동을 빚었다.
원양오징어가 몰고온 고기값 하락이 연안어업에 얼마나 큰 파문을 안기는가는 요즘 오징어잡이의 손익계산에서 한눈에 드러난다.
6월13일 제주근해에서 45일간 조업을 마치고 묵호항에 귀항한 제27만능호(80t급 선주 윤위환)는 오징어어획량이 2만1천6백kg.
kg당 7백37원에 위판, 1천5백90만원의 어획고를 올렸다.
영어자금 상환(어획고의10%)·반강제성수협예금(2%)을 제하고 선원몫으로 45%를 빼고나니 선주 윤씨에게 남는 돈은 7백70만여원.

<한달수입 4만원>
기름값·냉동등 출어경비로 8백50만여원이든 윤씨는 결국 80여만원의 적자출어를 한셈이라는 푸념이다.
그래도 기본자산(선박)이있는 선주들은 풍어를 맞으면 적자를 메울 가능성이라도 있어 하루생계를 바다에건 어부들에 비하면 나은편.
24일간의 조업을 마치고 20일 귀항한 주문진항소속 승연호(55t)선원 김현오씨(43)가 잡은 총어획고는 3백20kg에 24만원.
이중 자신의 분배몫으로 9만원양 받았으나 어구값 부식비등 5만원양 제하고보니 고작 4만원이 남았다.
졸음을 좇으며 어군을 추적했고 예리한 낚시바늘에 찢긴 수많은 상처들은 일당 1천6백여원양 벌기위한 것이었다.
『농촌품을 팔았어도 10만원은 벌었을거요.』
어구를 챙기는 김씨는 4식구 생계걱정때문에 머리가무겁다고했다.
현재 제값을 받지못해 동해안수협등 속초·주문진·묵호 냉동창고에 재어진 오징어재고는 1천20t. 액수로는18억원.
안팎곱사등이 연안어민들의 그나마 기대는 수협의 영어자금 증액.
자신들도 저인망등 어선처럼 시설을 보강, 어업강도를 높여 어획량이 늘어나면 적어도 적자는 면할수 있지않겠느냐는 한가닥 희망을거는 것이다.
그러나 수협의 입장 역시 난감하다.

<영어자금 명목뿐>
수협의 영어자금재원은 정부지원 10%, 한국은행 차입45%, 수협자체재원 45%의구성비.
결국 돈이 필요한 어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자체재원양 마련하다보니 문어 제다리 끊어먹기식 일수밖에 없어 자금확대가 어려운 실정이다.
『영어자금이래야 명목뿐이지요. 금액도 적고 적기방출도 안되고 갈증만 납니다.』
선주 정창낙씨(53·주문진항)의 하소연.
해마다 심화되는 동해안 흉어는 어업인구의 감소를 가속시키고있다.
현재 강원도 어업인구는 1만2천가가구 5만7천7백13명.
지난 10년간 4천9백가구 3만5천여명이 줄어들었다.
『우리같은 퇴물들이나 남아있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 일은 힘들고 벌이는 시원치않고 누가 어부질하겠어. 나도 바다를 배운게 잘못이지.』

<젊은이 바다떠나>
속초항에서 30년간 어부생활을 해온 박명철씨(58)는20∼30대 어부는 눈을 씻고봐도 찾아볼수 없다고 단언한다.
흉어로인한 수산물 가공공장의 운영난도 동해안의 또다른 고민거리다.
현재 80여개가공공장의 평균 가동률은40%.
속초의 경우는 37개 공장중 동창실업등 2개소는 4년째 문을닫았고 나머지 업체들도 조업을 단축, 가동률이30%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수산당국은 만성흉어를 타개하기위해 수산자원의 조성, 어선의 대형화, 이어지원등 갖가지 정책을 연례행사처럼 내놓지만 실제 어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도움은 없다. <특볍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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