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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안 되던 상품’ 배달시장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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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994년 이화여대 정문 앞에 1호점을 연 미고베이커리. 레어치즈·블랙포레스트 등 당시로서는 희귀했던 다양한 케이크를 선보이며 급성장했다. ‘이대 앞 케이크 집’에 머물지 않고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을 비롯해 서울 압구정동·강남역 등 주요 상권에 22개까지 매장을 늘렸다. 그러나 올 2월 롯데백화점 미아점을 마지막으로 모든 오프라인 매장을 폐점했다. 미국·유럽·일본의 유명 케이크 브랜드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임대료와 백화점 수수료를 감당할 수 있을만큼 상품을 차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카페베네·드롭탑 같은 커피전문점에 빵과 케이크를 납품하는데 주력하던 미고베이커리는 최근 ‘온라인몰을 통한 고급 케이크 배달’에 뛰어들었다. 미고를 운영하는 정영진 미후베이커리·패기파이 대표는 “최근 외식 시장에 배달 서비스가 확대되는 것을 보고 백화점에서나 살 수 있는 화려한 케이크를 가정에서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싶었다”고 말했다. 기존의 온라인 케이크 배달 서비스는 택배로 보내기 쉽도록 치즈케이크·롤케이크처럼 특별한 장식이 없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제품에 한정됐다. 미고는 기존에 백화점 매장에서 팔던 다양한 케이크를 본사 직원이 직접 가정까지 배달한다. 상품 차별화가 쉽지 않자 ‘배송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전국 맛집 배달 서비스’를 표방하는 온라인몰 ‘미래식당’은 속초 물회, 목포 민어회, 대구 육회를 당일배송하는 등 배송 자체를 상품화시켰다. 반나절이면 집에서 전국의 유명 먹거리를 맛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꽃 배달업체 ‘꾸까’는 2주에 한 번씩 2만원대 꽃을 ‘정기구독’하는 방식의 회원제 배송 서비스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매달 7000여건의 주문이 확보되면서 가격을 안정화하고 신선하게 꽃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머시주스’의 경우 서울 강남·서초구 등지에 하루 두 번 신선한 주스를 배달한다.

 중소업체들이 ‘배달이 안되던 상품’의 배송을 통해 새 시장을 열었다면, 대형 유통업체는 배송시간 단축을 통해 차별화하고 있다. 롯데슈퍼는 온라인몰 전용 물류센터인 롯데프레시센터를 통해 서울 서초·강남구 전역에 주문 후 3시간 이내에 배송한다. 그날 만든 반찬이나 갓 구운 빵도 배달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홈플러스는 오전 11시30분까지 주문해야 당일 배송을 받을 수 있던 것을 오후 4시까지로 늘렸다. 이마트는 남양주·고양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심야·새벽 배송을 시도하고 있다. 배송 서비스의 질을 강화하기도 한다. 롯데하이마트는 전자제품을 배송·설치한 뒤 전등을 교체하거나 세탁기·냉장고의 수평을 맞춰주는 등 추가 서비스를 제도화했다. 소셜커머스 쿠팡은 1000여명의 자체 배달 인력인 ‘쿠팡맨’이 배송하고 고객에게 직접 전달 못했을 때는 손으로 쓴 편지를 남기는 등 친밀함을 더했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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