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1년 … 피해 지역과 세계 어린이들 '사랑 교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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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태국 푸껫에서 110㎞ 떨어진 휴양지 카오락에서 현지 주민들이 불운을 쫓고 행운이 시작됨을 알리는 새 모양의 배를 만들어 안다만 바다로 내보내고 있다. 이날 쓰나미 피해자 추모 행사엔 1000여 명의 주민과 관광객이 모여 지난해 태국에서 숨진 5395명의 넋을 기렸다. [카오락 로이터=연합뉴스]

"많이 웃어봐. 슬픔이 사라질 거야."

"네가 보내준 인형 보며 희망이 생겼어."

어른들이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은 서로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꼭 1년 전 오늘, 동남아를 휩쓴 쓰나미(지진해일) 피해 어린이들의 이야기다. 쓰나미 1주년을 맞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학교(JIS)'가 어린이들끼리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아체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Aceh)'(사진)란 영문판 책을 펴냈다.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 어린이들과 JIS에 다니고 있는 각국 어린이들 사이에 오간 편지 1000여 통 중 100편을 골라 담았다. 아체는 쓰나미 전체 희생자의 70%가 넘는 17만 명이 숨진 곳이다. 고사리 손으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편지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체의 친구들을 위한 기도와 염원이 가득하다.

"내 이름은 메간이야. 취미는 스포츠. 난 네가 모든 걸 잘 이겨냈으면 해. 물론 어렵겠지. 그러나 친구들과 운동을 해봐. 슬픔이 조금씩 사라질 거야. 끝까지 용기 잃지마."

"메간, 네 편지 받고 너무 반가웠어. 난 11살이고 멜라보에 있는 이슬람 학교에 다녀. 난 지금 이 편지를 울면서 쓰고 있어. 난 매일 아침 해변에서 축구 연습을 했어. 그런데 쓰나미가 오던 날은 늦잠을 자서 못 나갔어. 해변에 갔던 내 친구들은 다 죽었어. 나도 그날 거기에 갔더라면 죽었겠지. 메간, 미안해. 더 이상 편지를 못 쓰겠어.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와. 우리에게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다시 축구를 하면서 힘을 얻을게."

한국 어린이 정화와 9살 동갑내기 수프리사가 주고받은 편지도 있다.

"친구야. 난 베트남에서 살다 왔고, 지금은 JIS에 다녀. 베트남을 떠날 때 너무 슬펐어. 그러나 너의 슬픔은 나보다 훨씬 더하다는 것 알아. 친구야, 슬픔을 쫓는 방법 가르쳐 줄게. 매일 많이 웃는 거야. 많이 웃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나도 그렇게 슬픔을 쫓았거든…."

"쓰나미 이후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네 편지 받고 용기가 생겼어. 매일 웃어야겠어. 난 지금 이재민 텐트에서 살고 있어. 쓰나미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모든 식구를 데리고 가버렸거든. 엄마.아빠는 천국에 잘 있겠지? 난 이제 슬퍼하지 않을게.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야."

인형 하나도 쓰나미 피해 어린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이었다.

"자카르타에 있는 내 인도 친구야. 인형 정말 잘 받았어. 난 쓰나미로 엄마.아빠를 잃고 세네복에 있는 이재민 수용소에서 살고 있어. 네가 보내준 인형을 침대 위에 놓고 매일 바라봐. 마음이 편안해. 먼 곳에 있는 친구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게 너무 고마워 용기가 생겨."(줄리아나.아체 세네복 초등학교 3학년)

편지에는 어린이 눈으로 본 쓰나미 당시의 절박했던 상황도 소개돼 있다.

"그날 아침, 난 엄마랑 가게에 있었어. 갑자기 엄마가 내 손을 잡으며 소리쳤어. '바닷물이 밀려들고 있어. 뛰어. 빨리….' 엄마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아빠와 형이 집에서 뛰어나왔어. 아빠를 따라가던 형은 파도에 휩쓸렸어. 파도에 밀려가며 울부짖던 형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와살람.아체 누르마라나야티 초등학교 3학년)

JIS는 책의 판매수익금 전액을 아체 구호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최근 "티없이 맑은 어린이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어른들이 쓰나미로 상처받은 어린이들의 동심을 되찾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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