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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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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런 세태에 중요한 것이 언론의 기능이다. 언론은 몰지각한 편가르기와 줄서기를 경계하고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을 북돋우는 공론장(公論場)을 제공해야 한다. 공론장은 존재하는 의사의 '전달'뿐 아니라 의제 설정과 대안 제시를 통해 바람직한 의사 '형성'을 주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사소통의 매개와 의제의 설정은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언론의 의제 설정이 스스로의 견해를 관철시키는 데 비중을 두게 되면 언론 스스로 권력화하게 되고 여론수렴 장치로서의 기능은 후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론은 동원될 뿐이고 스스로 형성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더구나 언론이 정치적 입지나 사회적 이해관계에 따라 노선을 '정리'하게 되면 말 그대로 또 하나의 정당, 또 하나의 이익단체가 돼버린다.

황우석 사태나 사학법 공방에서 보여준 일부 언론의 모습이 아쉽게도 그러하다. 언론이 어설픈 애국주의와 상업주의에 편승해 가짜 영웅 만들기에 일조하지는 않았는지, 언론 스스로 당사자가 돼 편가르기를 조장함으로써 객관적인 여론 형성을 오히려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여지가 많다. 취재윤리 규정을 위반한 행위로 누리꾼의 압력과 광고 해약 사태를 맞아 존폐 위기에까지 몰렸던 MBC는 물론 반MBC 분위기를 은근히 조장하거나 즐겼던 다른 언론기관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연구팀이나 언론의 윤리규정 위반이라는 절차적 문제와 과학적 성취, 논문 조작, 알권리라는 실체적 문제를 혼동하고 우왕좌왕함으로써 국민을 정신적 공황으로 내모는 데 기여한 것이다.

사학법을 둘러싼 공방도 마찬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 전교조의 집단행동을 학습권을 들어 비판하거나, 시민단체의 불복종 운동을 나라 흔들기로 규정하던 언론들이 사학법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런 주장을 편드는 논조를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태도다. 정치적.사회적 이해관계를 떠나 아닌 것은 아니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는 게 공론장인 언론의 올바른 태도다.

국정 책임을 나눠 가진 거대야당이 1년을 넘게 끌어온 사학법의 개정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다가 산적한 국정을 외면한 채 국회를 버리고 거리로 나선 행위를 나무라지 못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정치력이 부족한 여당의 책임론도 물어야 하겠지만 정치적 속셈이 뻔한 제1야당의 일탈에 대해 나무라지 못하는 것도 어정쩡하다. 만일 이 어정쩡함이 '우리 편'이라는 의식에 따른 것이라면 편가르기에 동참하는 또 다른 언론의 초상이 될 것이고 머지않아 경쟁이 치열한 매체시장에서 낙오할 운명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언론은 자기 편을 모으는 데 관심을 쏟기보다는 왜 언론에 헌법이 막강한 영향력과 자유를 부여했는지에 대해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성찰의 시점에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이 해답을 제시해 줄지 모르겠다.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언론이 기댈 가장 큰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그대 등 뒤에 있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