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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교만에서 벗어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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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황우석 쇼크로 실력 없는 교수들이 좌불안석이다. 어느 때 여론의 직격탄을 맞게 될지 모른다. 엉성하게 만든 리포트에서부터 짜깁기식 논문을 내놓는 일부 학자의 언행이 예전처럼 자유롭지 못할 분위기다. 그들에게 이중 삼중의 검증 절차를 벼르는 학계의 다수 관리자가 포진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이 번역한 책에 버젓이 이름을 올린 교수, 기업들의 뇌물성 위탁연구를 따오는 데 열을 올리며 국내외를 휘젓고 다니는 마당발 교수, 그럴듯한 명목을 만들어 연구비를 빼먹는 교수-그리고 정치를 합네, 무슨 위원회 활동을 합네-하고 적당히 강의시간을 때우던 교수들이 자신에게 닥쳐올 새로운 운명을 점쳐 보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모습이 아무리 비뚤어진다 한들 언제까지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상으로 버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연구에 찌든 교수들마저 왜 교만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지 아는가.

1년 전 이맘때 필자가 '황우석 교수를 걱정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을 때 얼굴을 알 수 없는 독자들에게서 참기 힘든 욕설이 연이어 날아왔다. 황 교수를 지원하는 모임의 회원이기도 한 내가 너무 그를 아낀 탓으로 교만에 빠지지 않았나 하고 반성도 해보았다. 나는 황 교수가 그 당시에 연구에 열중하지 않는 데 화가 나 있었다. 이른바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나 노벨상 수상자들의 공통점은 지속적인 집중력에 있다. 과학의 세계에서 최고의 천재로 알려진 뉴턴의 경우 바로 그 집중력 때문에 만유인력의 법칙 등 3대 발견에 성공했다. 그런데 황 교수는 엄청난 세금을 쓰면서도 연구실 밖의 세상만사에 관여하며 에너지를 분산시켰다. 그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집중력이 없었다. 국민의 꿈이 깨질 수밖에 없다.

기자나 PD들의 교만은 어설픈 지식과 주장으로 세상을 훈계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한다. 교수들의 교만은 캠퍼스 연구실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려는 데서 빚어진다. 출세와 명예와 돈이 바로 교문 밖에 있다는 착시현상에 빠진 탓이다. 언론인이나 교수들이 현재 위치에서 자신들의 직분을 다해야 하는데 직업윤리를 고민하지 않거나 가볍게 여기는 순간 교만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들이 교만해질 때 어느 종합병원의 응급실 입구에 앉아 있기를 권한다. 그래도 그 교만이 치료되지 않을 때 영안실 입구로 자리를 옮겨앉기 바란다. 정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황 교수와 함께 영안실 입구에 앉아 있고 싶다.

최철주 월간NEXT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