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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만의 생명을 던져 해 볼만한 일을 찾아야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주문진과 양양 사이, 행정구획 상으로는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남애리, 이곳은 작은 포구다.
이 포구의 지형은 어느 거대한 신검으로써 육지를 말굽쇠 모양으로 도려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양쪽 돌출부분은 그 신검으로써도 어쩌지 못할 만큼 견고해 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바위산이다. 바다 쪽에서 보면 그 바위산은 거센 파도를 가르며 돌진해오는 육지라는 배의 용골처럼 보일 것이다. 게다가 그 산에는 짙푸른 청솔들이 용골 위에 꽂힌 깃발처럼 해풍과 맞서 전신을 펄럭이고 있다.
이곳을 찾는 나그네는 그가 아무리 도회의 때에 절어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접시의 생선회를 앞에 하기 전에 발길이 저절로 그 바위산 쪽으로 이끌려가지 않을 수 없다.
산에 오른 그는 먼저 나무와 풀잎들이 그토록 맹렬하게 아우성치는 소리에 놀랄 것이다. 또 나무와 풀잎들로 하여금 그토록 맹렬한 소리를 자아내게 하는 것이 「바람」이란 것에 놀랄 것이다. 그가 알고 있었던 바람이란 고작 벽과 벽에 부딪쳐 그 기세가 이미 다 꺾여버린 죽은 바람뿐이었던 것이다. 바람은 산이 품고있는 것들로 하여금 어느 한순간도 정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매순간 대결을 통하여 바람을 뚫을 때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나그네는 이제 절벽 끝에서 발 아래를 굽어본다. 시퍼런 칼날 모양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산의 발치를 두드려댈 때마다 거품이 허옇게 날린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수없이 그 아래 흩어져있다. 물은 산에 칼처럼 덮쳐와서 부드러운 입김처럼 틈바구니마다 샅샅이 파고든다. 당장은 산이 물에 잠식되는 것을 가시할 수 없더라도 결국 저 아래 흩어져 있는 바위들은 물의 포획물이 되어버린 육지의 조각들이리라.
아, 그러고 보니 그 어느 태고적엔 저 쪽에 있는 또 하나의 산과 이쪽 산은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또 그때는 육지가 이렇게 말굽쇠처럼 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거대한 산이 2개로 갈라지도록 바다와 육지가 싸우기를 계속해왔다면 그 시간은 얼마만큼 될까? 백년? 천년? 만년? 또는 영겁? 어느 순간 나그네는 숨이 멎는 것 같았으리라. 시간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랬듯이 자기가 죽은 후에도 영겁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그가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느낄 수 없었을 뿐이다. 그의 삶은 한시간 후의 약속, 하루 후의 약속으로 숨가쁘게 이어져있다. 그에게 긴 시간의 축척을 일깨워주던 것들 마저 그의 주위에서 급격하게 사라져가고 있다.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적들은 보수란 이름으로 「예」스러움을 상실해가고, 수령 1백년 2백년 된 나무들은 무슨 원, 무슨 댐을 건설하느라 아낌없이 베어지고 있다. 가시적 시간의 나이테들이 점점 사라져 감에 따라 그의 감각과 가치관은 내 당대로 좁혀졌다.
2년 전 로마에 갔을 때 그곳 대사가 『이곳 사람들의 정신 속엔 이터니티가 들어있다』고 하던 말이 기억난다. 또「쿠크」선장이 오래 전에 태평양 한가운데서 무인도를 발견했을 때 그 섬엔 5백 개나 되는 거대한 조상과 수많은 해골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 사라진 어느 종족이 자기들의 삶을 단지 먹고 마시는 데만 허비해버렸더라면 이 땅위엔 그들이 살다간 어떤 흔적도 남지 못했으리라. 마침내 나그네는 치열성과 영원성에 그 정신이 접목되어 산(용골)에서 내려온다. 이제부터는 영원히 남을 그 무엇, 「절대」를 찾아 나설 일이다. 그가 의사라면 의술을 통하여, 교사라면 가르침을 통하여, 예술가라면 작품을 통하여. 그것이야말로 한번밖에 태어나지 못한 소중한 생명을 다 던져 기어이 해볼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서영은 약력 ▲43년 강원도 강릉 출생 ▲건국대 영문과중퇴 ▲68년 사상계와 월간문학 통해 문단에 데뷔 ▲83년 작품 『먼 그대』로 이상문학상수상 ▲작품집 『사막을 건너는 법』 『살과 뼈의 축제』『술래야 술래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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