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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반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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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랑하는 사람에게선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친근감이 든다. 전에 어디에선가, 전생에서 혹은 꿈속에서 만났던 것 같은 묘한 감정도 느껴진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통할 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질 때 그런 느낌은 더 강해진다. 원래 한 몸이었다가 떨어져 나간 '반쪽'이기에 애정과 친숙함이 배어있다는 속설도 있다. 자신의 반쪽과 만나 짝을 이루는 것이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반쪽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등장했다. 철학자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에서 희곡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반쪽의 개념을 통해 사랑을 설명했다. 태초에 인간은 네 개의 손과 발, 둥그런 등과 옆구리, 똑같은 두 개의 얼굴이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는 자웅동체(雌雄同體)였다. 하나의 몸뚱이에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양성공유자(兩性共有者)를 말한다. 순수한 우리말로는 '어지자지'다. 제기차기에서 양발을 번갈아가면서 사용하는 방법을 뜻한다.

그런데 이 자웅동체의 인간은 엄청난 힘과 비상한 능력을 지녔다. 신(神)들에게 대드는 오만불손한 태도도 보였다. 제우스가 그런 인간의 방종을 방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에게서 힘을 약화시키고 오만하지 않도록' 몸을 여자와 남자 반반으로 갈랐다. 둘로 나뉜 얼굴의 반쪽은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도록 마주 보는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이후 반쪽이 된 인간은 잘려나간 또 다른 반쪽을 사모하며 끊임없이 찾아다녔다. 서로 껴안고 하나가 되려는 욕구에 불타게 됐다. 인간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자기의 반쪽을 찾아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노력, 그 원초적 본성이 사랑이라고 아리스토파네스는 규정했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을 가장 아껴주는' 사랑의 신 에로스(Eros)에게 순종하고 원초적 본성을 실현시킬 때 행복해진다고 주장했다. '향연'은 그리스 지도층 인사들이 '함께 먹고 마시며(심포지엄)' 에로스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토대로 한 작품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자신의 반쪽과 함께 조촐한 심포지엄, 즉 향연을 열어 사랑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그것은/때때로 당신이/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읊은 혁명가 체 게바라처럼 멋진 시구가 나올지 누가 알겠나.

고대훈 사건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