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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칼럼

필트다운 두개골과 황우석 줄기세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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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영국 서섹스 지방의 변호사 겸 아마추어 지질학자 찰스 도슨은 1912년 런던에서 열린 지질학회에서 고고학자들이 찾고 있던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발견했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도슨은 서섹스 지방 필트다운의 들판 자갈밭에 묻혀 있는 화석인의 두개골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뼈가 30만 년 전 그 지방에 살았던 화석인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는 영국 자연사박물관 지질학부장 아서 우드워드, 왕실인류학연구소 소장 아서 키스, 유명한 뇌 전문가 그랩튼 스미스, 프랑스의 진화론 전문가 드 샤르뎅 신부가 참여했다. 황 교수의 논문에 섀튼 박사가 공동저자로 이름을 얹은 것과 유사하다.

도슨의 발표에 영국인들이 열광하고 전 세계 과학계와 종교계가 주목했다. 필트다운의 두개골 이야기를 실은 신문들은 불티나게 팔렸다. 황우석 스토리로 신문과 방송에 이목이 쏠린 것과 다를 바 없다. 화석인은 에오안드로푸스 도스니로 명명됐다. '도슨의 새벽의 인간'이다. 영국이 필트다운의 두개골에 흥분한 데는 국민정서적인 동기가 있었다. 영국인들은 인류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이 모두 유럽 대륙에서 발견된 데 불만이 있었다. 필트다운의 두개골이 그런 영국인들에게 인류의 조상이 영국에서 살았다는 자부심을 제공했다. 한국인들이 황우석 팀의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기대한 것이 노벨상이요, 생명공학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었던 것과 같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필트다운의 두개골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결정적으로 확인하는 물증으로 대접받았다. 두개골의 석고상은 전 세계의 박물관에 보내졌다. 키스와 우드워드와 스미스는 '위대한 발견'에 대한 보상으로 국왕으로부터 작위까지 받았다. 황 교수에게 제공된 수백억원의 거국적 지원과 요인 수준의 경호, 대한항공의 평생이용권 제공에 해당하는 무형의 보상이었다.

필트다운 스캔들과 황우석 사건이 가장 많이 닮은 점은 전문가들이 제기한 의혹이 위대한 과학적 업적에 대한 열광(영국)과 영웅 수준의 과학자에 대한 거국적인 존경과 기대(한국)에 묻혀버렸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언론의 흥분과 '뭔가 최고'를 갈망하는 대중의 기대가 빚어낸 쏠림현상이다. 1916년부터 필트다운 두개골의 턱과 이빨이 침팬지의 것이고, 턱뼈와 두개골이 동일한 생명체의 것이 아니고, 이빨에 줄질을 한 흔적이 있다는 보고서가 나왔지만 무시됐다. 황우석 팀의 논문에 대한 젊은 과학자들의 문제제기가 묵살된 것의 선구(先驅)다. 두개골의 우상은 53년 불소를 이용한 새로운 연대측정 방법 앞에 마침내 파괴됐다. 지질학자 케네스 오클리와 인류학자 조셉 위너는 두개골은 몇백 년 전에 죽은 사람의 것이고 턱뼈는 오랑우탄의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필트다운 두개골 스캔들이 형이상학적인 것이었던 데 반해 황우석 사건은 난치병 치료와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와 한국의 국가 신인도와 이익이 얽힌 사건이다. 충격이 크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사건의 본질은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의 진위다. 그러나 사건의 문화적 하부구조에 주목하지 않으면 깔끔한 정리가 안 된다. 경제를 포함한 모든 것의 압축성장에 익숙한 조급증과 적당주의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불감증이라는 한국병이 바로 그 하부구조다. 황우석 교수의 결백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반성은 한국병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