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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 책방 기행] 맨해튼의 독립서점 맥널리 잭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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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널리 잭슨의 천장은 ‘날으는 책’으로 장식했다.

인간은 이야기하면서 성장한다. 책은 인간들의 이야기다. 뉴욕 맨해튼의 독립서점 맥널리 잭슨(Mcnally Jackson)은 인간 이야기가 춤추는 책의 집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인간들이 모이는 아고라다. 담론의 광장이다. 사르트르는 “말을 나눔으로써 나와 우리는 세계를 발견하고 창조한다”고 했다.

책의 도시 뉴욕. 2004년 9월 맨해튼 소호에 문을 연 인디책방 맥널리 잭슨은 뉴욕 지식인들이 애호하는 담론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타임스같은 미디어들이 주목한다. 출판사들은 독자와 만나는 채널로 이곳을 활용한다. 11년밖에 안 된 책방인데, 어떻게 가능할까.

맥널리 잭슨을 설립한 사라 맥널리

맥널리 잭슨을 창립한 캐나다 출신의 사라 맥널리(39)는 작은 책방의 역할이 분명 있다고 확신한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나 반스앤노블 같은 대형 책방이 할 수 없는 일을 작은 책방이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4000여 인디서점이 문을 닫았다고 미국서적상협회(ABA)는 집계했다. 맥널리 잭슨이 문을 연 2004년은 쓰나미가 미국 서점계를 강타한 해였다. 1000여 개 인디서점이 문을 닫았다. 그런 상황에서 책방문을 열었다. 스스로도 “정신나간 짓”이라고 했다. 출판·서점계도 의아해했다.

“아마존에서는 쇼핑을 즐기지 못합니다. 사회적 경험도 불가능합니다. ”

그는 어려서부터 책 속에서 살았다. 부모님이 캐나다에서 가장 큰 서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방 곳곳에 탁자와 의자를 놓아 사람들이 편하게 책을 만나게 한다.

“책방은 사람을 모이게 합니다. 이 책 저 책 읽을 수 있습니다. 생각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책방에서 사람들은 창조의 과정을 체험합니다. ”
맥널리는 1999년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왔다. 베이직북스에서 잠깐 편집자로 일했다. 책방을 열기 전 9개월 동안 아프리카를 여행했다. 탄자니아·짐바브웨·모잠비크를 방랑했다. 말라위 호수의 아득한 치주물루 섬에서 삶의 행로를 생각했다.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책

“우리 책방엔 미디어에서 다뤄 친근한 책도 물론 들여놓지만 전혀 논의되지 않는 책도 중시합니다. 우리 책방만의 고유한 책의 세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

반스앤노블 같은 대형책방이 비치하지 않는 책들이 맥널리 잭슨에는 있다. 아프리카와 스페인,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러시아와 아시아 작가의 책을 확보해놓고 있다. 독일 코너, 오스트리아 코너, 중동 코너를 독자들은 금방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과 페르시아 작가들의 작품도 돋보이게 진열해놓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우리 책방의 주제입니다. ”

맥널리 잭슨은 현재 6만여 종의 책을 확보하고 있다. 이중 7000여 권이 세계문학이다. 지금까지는 문학을 중시했지만 차츰 ‘세계의 인문학’으로 주제를 확장하려 한다.

“아마존은 엄청난 양의 책을 팔지요. 그러나 아마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않을 겁니다. 지극히 기능적으로 일하니까요. 아마존에 책 문화를 맡겨둔다는 것, 끔찍하지 않습니까. ”

저자·독자·편집자가 모이는 책방

맥널리 잭슨은 독자들만 찾는 책방이 아니다. 독자와 저자와 편집자가 더불어, 책이 담아내는 문예와 인문을 담론한다. 작가를 초청할 때 으레 패널이 붙는다. 담론의 다양성과 깊이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때로는 맥널리가 직접 행사를 진행한다.

맥널리 잭슨은 한마디로 ‘이벤트 책방’이다. 1주일에 6~7회 행사가 열린다. 세계문학의 밤, 시의 밤이 열린다. 해외작가가 초청된다. 인문학 책을 놓고 토론한다. 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참가자들은 ‘세계시민’이 된다.

지난해 6월에는 세계문단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노르웨이의 젊은 작가 칼 오베 크네우스고르를 초청했다. 2009~2011년에 발표한 그의 6부작 자전소설 『나의 투쟁』 영어판 1,2,3권 출간에 즈음해서였다. 북유럽 문학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잡지 '뉴요커'도 그의 작품을 대서특필 했다.

맥널리 잭슨은 이 신예작가를 초청했다. 뉴욕의 인디서점들은 크네우스고르의 ‘뉴욕 출현’을 알리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뉴욕대 교수이자 소설가인 제이디 스미스가 패널로 나섰다.

작가와의 대화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북클럽과 스터디클럽이 책방 한구석에 있는 카페에서 열린다.

“우리는 입장료를 받지 않습니다. 시민들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

맥널리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의 북리뷰에 비판적이다. “미디어도 브로커가 되어가고 있지 않나요. 뉴욕타임스 북리뷰도 따분해요. 직업상 그걸 읽어야 하기에 읽고는 있지만 장황해요. 신뢰할 수 없어요. ”

사라 맥널리는 올해 열 살인 아들 잭슨의 이름을 따서 책방 이름을 맥널리 잭슨이라고 붙였다. 컴퓨터로 공부시키지 않는 학교에 보낸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여기엔 중세문명을 초토화시킨 페스트의 창궐처럼, 21세기 물신주의의 상징인 스마트폰이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을 심각하게 손상시킨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출판의 정글 맨해튼에서 살아남기

맨해튼은 문명의 정글, 출판의 정글이다. 맨해튼의 출판생태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불능이다. 2011년에는 거대 체인서점 보더스가 무너졌다. 이 정글에서 살아남은 책방 맥널리 잭슨은 경이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사업 초기 5~6년 동안에는 다소 어려웠지만 2010년부터 해마다 15%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할아버지에게 재정 지원을 받아 책방 맥널리 잭슨을 창립한 사라 맥널리는 오늘도 책방의 프론트를 지키고 있다.

전자책과 아마존이 종이책과 오프라인 책방을 대신할 것이라고 다들 호들갑을 떨었지만, 최근 그렇지 않다는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서적상협회에 따르면 2009년에 1651개였던 인디서점이 2014년에는 2094개로 늘어났다. 반스앤노블의 종이책 매출은 2014년에 5% 증가했지만 전자책 단말기 누크는 7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포브스'가 보도했다. 아마존 킨들도 2011년에는 1300만 대가 팔렸지만 2012년에는 970만 대로 줄었다.

“종이책은 패션에 민감한 다른 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

맥널리 잭슨의 게시판엔 다양한 이벤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정보가 올라와 있다.

맥널리 잭슨은 지난해 55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책방 인근에 아트숍을 따로 열었다. 매출 100만 달러다. 브루클린에 또 하나의 책방을 여는 걸 검토하고 있다. 책방의 담론공간이 되는 카페가 책방보다 수익률이 높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난 사람들의 심성을 믿습니다. 뷰티풀 마인드!”

작은 책방에 가능성 있다

책방을 처음 열 때 이 지역은 한산했다. 그러나 이젠 카페도 생기고 레스토랑도 생겼다. 지식인과 작가가 드나들고 독자가 몰려오면서 맥널리 잭슨이 성공하고 있다고 여러 미디어가 보도하자 투자회사들이 이런저런 곳에 책방을 내면 어떻겠느냐면서 먼저 투자를 제의해오고 있다.

“책 비즈니스가 아니라 책의 힘입니다. 내가 읽는 책, 내가 읽은 문학의 힘! ”

사람들은 책을 읽고 싶어하는 동시에 책을 쓰고 싶은 소망도 있다. 저자가 독자가 되고 독자가 저자가 되는 시대다. 글읽기와 글쓰기의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시대다. 맥널리는 이 같은 인간의 소망을 그의 책방 비즈니스에 연계시킨다. ‘에스프레소 북 머신(Espresso Book Machine)'이 그것이다. 나의 책, 나만의 책을 만들어준다.

책을 써오면 10분 안에 디자인·편집해서 소량의 부수를 인쇄·제책해준다. ‘나의 고전’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700만 타이틀의 저작권 없는 책이 구글에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다. 누구든 이들 책을 다운받아 ‘나만의 고전’을 만들 수 있다. 맥널리 잭슨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허먼 멜빌의 『모비딕』 같은 고전을 한 권의 종이책으로 만들어준다. 1년에 700여 권의 책을 에스프레소 북 머신으로 제작해주고 있다.

맥널리 잭슨을 자주 찾는 뉴욕의 베스트셀러 작가 캐롤라인 리비트는 “특정 저자를 편애하지 않고 모든 작가와 책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책방 맥널리 잭슨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만의 책’을 의뢰하는 독자도 당당한 저자가 되어 담론의 주역이 되는 것이다.

“늙은 노숙자가 길에서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가 2% 떨어지면 뉴스가 되는 세상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다.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맨해튼이지만, 책방 맥널리 잭슨에 드나드는 뉴요커들은 그래도 교황의 이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 책으로 꿈꾸는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병적 징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을까.

김언호 한길사 대표

서점 정보
주소: 52 Prince street, NYC, NY10012
전화: 212-274-1160
www.mcnallyjacks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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