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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공적자금, 빚 받고 빛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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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재정경제부 공적자금사무국의 정병기 회수관리과장은 요즘 아침 출근길이 가볍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기업의 주가가 거의 매일 올라 회수 가능 금액도 쑥쑥 불어나고 있어서다. 정 과장은 "공적자금이 처음 투입된 1998년과 99년에만 해도 회수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금은 이 수치가 50~60%로 높아졌다"고 말한다.

올 들어 주가가 치솟고 부실기업들이 잇따라 되살아나면서 공적자금 회수에 청신호가 켜졌다.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비난을 받으며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부실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알짜기업으로 변신했다. 우리금융지주.하이닉스.현대건설.대우건설.대우조선해양.대한통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을 인수하기 위한 경쟁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공적자금이 기업 회생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회수에 '파란 불'=외환위기 이후 모두 167조8000억원의 공적자금이 금융사나 기업에 투입돼 10월 말 현재까지 75조7000억원이 회수됐다. 회수율은 45.1%. 회수율이 올라간 가장 큰 이유는 주식 형태로 투입된 공적자금의 평가액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12조1000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우리금융이 대표적인 사례다. 1년 전만 해도 겨우 8000원대를 맴돌던 우리금융 주가는 22일 현재 2만150원이다. 예금보험공사 보유 지분 77.97%의 평가액은 12조6633억원에 달한다. 예보는 지분 분할매각(블록세일)과 배당 등을 통해 8809억원을 이미 회수했다. 예보가 이 지분을 매각할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을 빼더라도 공적자금 투입분 이외에 1조5000억원 이상을 더 회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흥은행에 들어간 돈도 평가액이 원금을 넘어섰다. 예보가 2003년 조흥은행을 신한금융지주에 매각하며 갖게 된 신한금융지주의 (상환전환) 우선주 가치는 최근 주가 상승에 따라 1조9000억원에 이른다. 매각 당시 받은 현금(1조2700억원) 등을 감안하면 투입된 돈보다 1조원 이상을 더 회수해 결국 남는 장사를 하게 된 셈이다.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부실채권정리기금을 통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옛 대우계열사들도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알짜기업으로 거듭났다. 캠코는 3월까지만 해도 대우건설.일렉트로닉스.종기 등을 매각해 대우계열사에 투입된 12조7000억원의 공적자금 중 9조9000억원을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최근 관련 주식의 가격이 급등해 100% 이상 회수를 낙관하고 있다.

◆보험권 회수는 아직 난망=정부는 공적자금 회수율이 높아져도 전체의 40%가량인 60조원은 회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출자.출연을 통해 자금을 지원한 회사가 아예 청산됐거나 금융회사의 예금 대지급 등으로 물어준 돈은 고스란히 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 초 뉴브리지 캐피탈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판 제일은행에서만 5조원 이상이 사라졌다. 외환위기를 촉발한 종금사들의 경우 예보와 캠코를 통해 모두 23조원이 투입됐지만 회수된 돈은 7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주식 등 유가증권 형태로 남아있어 '회수 가능'으로 분류되는 상당수 공적자금도 실제 회수 가능성은 미지수다. 이런 문제는 주로 출자와 출연을 통해 모두 21조2000억원이 투입된 보험권에서 두드러진다. 이 중 출자금 회수와 파산 배당 등으로 회수된 돈은 3조1500억원에 그치고 나머지는 회수가 불투명하다.

예컨대 3조5500억원이 투입된 대한생명은 한화그룹에 판 51%를 제외한 나머지 49%의 예보 지분 매각이 쉽지 않다. 생보사 상장 논란으로 기업공개가 어려운 데다 경영권도 없는 주식을 인수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10조2500억원을 지원받은 서울보증보험도 누적결손금이 9조원에 달해 공적자금 회수를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 유시왕 동아대 교수는 "위기 상항이 지났기 때문에 (파는) 값뿐 아니라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예전처럼 블록세일이나 공개 입찰에만 매달리지 말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호.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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