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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남대천 우리 연어의 희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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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강원도 양양군 남대천의 우리 연어. 이곳에서 태어나 북태평양 베링해나 알래스카만에서 살다가 2~5년 뒤 모천(母川)으로 돌아온다. [사진 양양군]

나는 연어입니다. 정확히는 첨(Chum) 연어의 새끼입니다. 안도현님의 동화 『연어』의 주인공인 ‘은빛연어’나 ‘눈맑은연어’와 달리 이름이 없습니다. 굳이 이름을 짓는다면 ‘우리 연어’라고 하렵니다. 우리나라 강에서 태어나 멀리 북태평양에서 성장해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내 고향은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한국수자원관리공단 양양연어사업소입니다. 지난 1월 거의 막내로 알에서 깨어났습니다. 현재 몸 길이는 9㎝, 몸무게는 2g 정도입니다. 요즘엔 북태평양에 가기 위해 양양 남대천 하구 등에서 바닷물 적응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늦어도 이달 중순이면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일본열도와 캄차카반도가 보이는 러시아 연안을 지나 북태평양 베링해나 알래스카만에서 살다가 이르면 2년, 늦으면 5년 뒤 남대천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우리 연어의 처지가 어떨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습니다. 최근 국내에 연어 열풍이 불어 연어 소비가 크게 늘었지요. 그런데 수입 연어는 환대받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 연어는 그렇지 못합니다. 수입 연어는 회를 비롯해 통조림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고 전문식당도 생기고 있지만 우리 연어는 한정된 식품 재료로 사용될 뿐입니다. 값도 수입 연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요.

 연어 열풍으로 수입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2010년 9374t에서 지난해엔 2만5254t으로 급증했습니다. 금액으로는 6891만 달러에서 1억9671만 달러로 늘었습니다. 연어 열풍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랍니다. 중국도 연어를 즐기기 시작하는 등 아시아의 연어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답니다. 연어 생산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가 늘다 보니 값도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현재 냉동 수입 연어는 1㎏에 6000~7000원, 이보다 고급인 횟감용 냉장 연어는 1㎏에 1만~1만2000원 정도입니다.

 그러면 저와 같은 우리 연어는 어떨까요? 양양연어사업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잡힌 연어는 모두 11만5645마리였습니다. 이 중 바다에서 잡힌 연어는 수협을 통해 위탁 판매됐습니다. 총 판매액은 4억4600여만원입니다. 마리당 4620원꼴입니다. 양양연어사업소에 잡힌 연어는 1마리에 2500원씩 식품회사로 넘겨졌습니다. 삼척내수면개발사업소에 잡힌 연어는 어촌계 주민이 말려 마리당 5000원에 팔았답니다.

 이렇게 팔린 연어는 스테이크나 생선가스, 도시락 반찬구이용으로 가공돼 산업체나 학교 급식용으로 판매됩니다. 그런데 이건 그나마 낫습니다. 경북민물센터에서 잡힌 연어 중 2800여 마리는 인근 축산사료공장에 무료로 넘겨졌고 171마리는 땅에 그대로 묻혔습니다.

 이처럼 우리 연어가 수입 연어보다 홀대받는 것은 맛이 다소 떨어진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데다 양도 한정돼 있기 때문이랍니다. 양식이 되지 않는 우리 연어는 대부분 양식인 수입 연어에 비해 기름기가 덜하답니다. 또 수입 연어는 양식이라 사계절 필요한 만큼 공급 가능하지만 우리 연어는 10~11월에야 만날 수 있습니다. 양도 아직 적고요. 여기에 우리 연어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개발돼 있지 않은 것도 푸대접을 받는 원인 중 하나랍니다.

 그럼에도 우리 연어의 앞날에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파마리서치라는 회사는 우리 연어 수컷의 정소를 활용해 피부재생의약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조만간 코스닥에도 상장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연어의 본고장인 양양에서도 박정란(62·여) 샐몬푸드 사장 같은 이가 우리 연어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10년 전 연어 가공공장을 세우면서 우리 연어와 인연을 맺은 그는 올해부터 우리 연어를 활용한 음식을 본격적으로 내놓겠다며 의욕에 차 있습니다.

 우선 우리 연어가 돌아오는 가을철에 ‘연어어뎅’(기름에 튀기지 않은 어묵)과 염장 후 숙성한 회를 선보일 계획이랍니다. 연어 완자도 만들고 있는 그는 “식품 종류를 늘리고 스토리를 개발하는 등 특화해 나가면 수입 연어 못지않게 대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무겁던 마음도 밝아지고 물살을 헤치는 지느러미에도 힘이 생기는 듯합니다. 모쪼록 몇 년 뒤 남대천에 돌아왔을 때는 우리 연어에 대한 대접이 지금보다는 나아져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때의 내 모습을 그리며, 잘 커서 돌아오겠습니다. 만나 뵐 때까지 건강하고 안녕히 계세요.

양양=이찬호 기자 kab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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