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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겉과 속 다른 이토 히로부미, 아베의 전주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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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한상일 지음
까치, 460쪽, 3만원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저격 당한 대한제국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우리에게 한일병탄을 주도한 인물로 인식되지만, 학계에는 이견도 존재해왔다. 이토의 보호통치는 끝까지 한국병탄을 의도하지 않았으며, 그의 정책은 한국인의 문명도와 자치능력을 높이려는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안중근이 이토를 암살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말 그럴까.

일본 군복을 입은 영친왕(1897~1970·오른쪽)과 이토 히로부미. 1907년 사진이다. [중앙포토]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병탄 문제를 연구해온 한상일(74) 국민대 명예교수는 지난 5년여간 이토에 대한 다양한 사료를 파헤쳤다. 표면상으로 이토는 병탄반대론자가 맞았다. 그는 통감 재임 동안 일본은 한국을 병합할 필요도 없고, 의지도 없다는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그가 실시한 정책을 살펴보면 달랐다. 이토가 한국문제에 깊이 관여한 것은 1905년 러일전쟁 막바지부터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 직위에서 물러난 1909년까지 4년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 중에 이토는 당시 총리대신이던 가쓰라 다로가 말한 대로 “유사 이래의 숙제이고, 유신 이래의 현안”이었던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가능케 만들었다. 저자는 그가 보호통치의 명분으로 내세운 문명·계몽·식산흥업·독립·자치능력 등은 결국 일본의 ‘국시(國是)’를 완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책은 앞쪽 상당 부분을 이토의 출생과 성장, 일본에서의 정치적 위치를 다루는 데 할애한다. 이토는 일본에서 메이지 체제의 초석을 다졌고, 국가의 틀이라 할 수 있는 헌법 초안을 기초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보수정당을 창당했다. 러일전쟁과 청일전쟁도 주도했다. 그는 결국 일본 정부의 핵심 인사였으며, 한국병탄과 관련된 정책 역시 그의 표면적인 언설과 별도로 일본 정부의 커다란 구상 아래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 예로 1905년 10월 고종을 만난 그는 외교권을 일본에 넘겨줄 것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결정은 일본정부가 모든 것을 고려하여 결정한 최종적인 것입니다. 만일 폐하가 거부해도 제국정부는 이미 정한 바가 있어 그대로 시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의 통치에 대한 ‘미화’가 가능했을까. 저자는 대한제국의 운명을 가름하는 중요한 순간의 기록이 일본에 자세히 남아있지만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든다. 가해자의 입장만을 반영한 당시 기록은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 어떤 목적, 즉 일본의 한국병탄을 정당화하기 위한 만들어진 역사일 뿐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런 움직임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사를 다시 쓰거나 지워버리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를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S BOX] ‘닮은 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 히로부미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 사이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1536~98)와 종종 비교된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1534~82)의 짚신을 들고 다니던 하인 신분에서 막부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른 도요토미는 일본 역사에서 무(無)에서 권력의 정상에 오른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이토의 경우도 비슷했다. 이토는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으로 관미(官米)를 유용한 탓에 더 이상 고향에서 살 수 없어 쫓겨나야만 했던 그의 부친은 온갖 고생 끝에 하급 무사계급으로의 신분상승을 이뤄낸다. 이토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서로 쌓은 지력을 바탕으로 막부 말기의 지사들과 폭넓게 교류했고, 1868년 메이지 신정부에 등용된 후 수많은 의견서를 제출하며 입지를 다져 나갔다. 바다 건너 조선땅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점 또한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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