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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투명한 회계'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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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SK글로벌 분식회계로 인해 IMF 경제위기 이후 정부를 비롯한 각 경제주체의 회계 투명성 개선 노력이 또 다시 중대한 도전을 맞고 있다.

엔론 사태에서 비롯된 회계 투명성 문제는 미국으로 하여금 사베인-옥슬리법을 제정하도록 했고 우리나라도 회계개혁법안을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회계개혁안 중에는 회계감사법인 강제 교체화 규정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모든 회사가 예외없이 감사인을 일정 기간마다 교체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인 강제 교체화'가 과연 회계감사의 투명성을 확보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들이 고려돼야 한다. 새로운 정책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효과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감사인 강제 교체제 효과 의문

첫째, 감사인 강제 교체화 방안은 경영진과 감사인 간에 유착관계가 발생할 것이라는 개연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만약 감사인 선임위원회가 경영진에 대해 독립적이고 또 투명한 회계정보를 원한다면 외부감사인들의 독립성은 실질적으로 확보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단순히 강제적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새로운 감사인이 독립적이 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경영진으로 하여금 수많은 감사인 중 자신들의 니즈(needs)에 맞는 감사인을 선택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스스로 '잘하고 있는' 기업들이 아니라 취약한 재무구조, 악화된 수익성, 그리고 비효율적인 지배구조 등 분식회계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기업들이며, 실제 기존의 많은 분식회계 사례는 이에 해당된다.

둘째,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매우 강력한 회계감독 기능을 가진 국가다.

현행의 감리제도는 분식회계와 부실감사에 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그 처벌 수위 또한 낮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강력한 감시제도는 이미 충분하게 확보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감사인 교체는 외국자본시장에서 매우 예외적인 공시사항인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감사인 교체의 이유에 대해 시장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제공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곳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실험'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공인회계사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힘든 시험을 거쳐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을 구비한 인재들이며 실제 이들의 우수성은 사회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물론 아무리 우수한 집단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게을리한 부실감사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고 또 사회는 그들에게 보다 엄격한 책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들 전문가 집단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이들은 현재 외국에 비해 턱 없이 낮은 감사보수와 열악한 감사환경 아래서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만약 이들로 하여금 감사품질을 통한 경쟁을 하지 않고 단순히 '소형법인화'를 추구하도록 유인하게 된다면 결국 우리 경제의 투명성과 경쟁력은 그만큼 약화될 것이다.

*** 열악한 감사환경 개선 등 시급

실질적으로 회계 투명성이 확보되려면 먼저 투명회계에 대한 기업들의 의지와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 다음, 전문성과 독립성을 바탕으로 하는 회계감사의 품질이 확보돼야 하고 이에 대한 모니터링의 효과성과 효율성이 확보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그러므로 회계개혁안은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의 비효율성과 열악한 감사환경 등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제쳐놓고 감사인 강제 교체화 등 가시적인 변화만을 염두에 두다가 시장 전체에 또 다른 부담을 안기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미 도입하고 있는 여러 좋은 제도들이 본래의 취지대로 작동을 한다면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문제는 대부분 해결될 것이다.

李昌雨 (서울대 교수, 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