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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출퇴근 대란… 대기업 20% 결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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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5년 만에 대중교통 파업이 벌어진 미국 뉴욕에서 21일 아침 출근길 시민들이 택시를 타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세계의 경제 수도'를 자처하는 미국 뉴욕시가 25년 만의 전면적인 대중교통 파업으로 21일 이틀째 큰 혼란을 겪었다. 지하철.버스 등에 종사하는 뉴욕 대중교통 노조(TWU)의 조합원 3만4000여 명은 연금 제도를 둘러싼 노사협상이 결렬되자 20일 새벽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 퀵보드까지 동원한 출근 전쟁=버스.지하철을 이용해 온 700만 명의 뉴욕 시민과 뉴저지주 등 인근 지역 주민들은 홍역을 치르고 있다. 특히 강에 둘러싸인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고통은 더하다. 시 당국이 맨해튼으로 연결되는 다리와 터널을 통제하고 네 명 이상 탄 차만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용차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주변 직장 동료나 이웃과 미리 조를 짜거나, 도로변에서 생면부지의 행인들을 태우고 맨해튼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마저 여의치 않은 수십만 명의 직장인들은 이틀 연속 영하 5도의 추위 속에서 2~3시간씩 걷거나 자전거.롤러블레이드, 심지어 퀵보드를 타고 출근했다. 상당수는 정장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걸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도 브루클린 다리를 걸어서 출근했다. 일부 회사는 급히 통근용 버스를 확보해 직원들을 실어날랐다. 뉴욕 타임스(NYT)는 "걸어서 출근하다 지쳐 귀가하거나 아예 출근을 포기한 직장인도 많았다"고 보도했다. NYT는 대기업의 경우 임직원 중 20%가량이 결근했다고 덧붙였다. 20일 밤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기차로 맨해튼을 빠져나오려는 수천 명이 퇴근길에 펜실베이니아 역으로 몰리는 바람에 역사 출입구 가운데 일부가 봉쇄됐다.

◆ 노조에 하루 100만 달러 벌금=설마 했던 교통 대란이 일어나자 뉴욕시 법원은 20일 오후 파업을 강행한 TWU에 하루 1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아울러 파업을 주도한 노조 지도부에겐 1인당 1000달러의 벌금형을 추가로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공공기관 근로자들의 파업을 금지한 뉴욕주 '테일러법'에 따른 것이다. 1966년 제정된 이 법은 공공기관에서 불법 파업이 일어나면 가담자들에게 하루 파업당 이틀치 임금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리고 구류형도 내릴 수 있다.

뉴욕시도 강경대응에 나섰다. 블룸버그 시장은 "노조원들이 파업을 중단하고 복귀하기 전까지 어떤 협상도 없다"며 "이번 파업은 뉴욕시의 연말 경기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는 극히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TWU는 법원 결정에 불복해 항소 의사를 밝히는 등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뉴욕주가 시 당국과 노조 간 중재에 나섰으나 21일 현재 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없다. 이번 파업 사태는 직원들의 연금 수령 개시 시기 등을 놓고 노사 간 타협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 당국은 55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현행 규정을 고쳐 신규 채용자부터 연금 수령 시기를 62세로 올리자고 요구해 노조와 충돌했다.

◆ 하루 손실액은 최소 4400억원=크리스마스를 코앞에 두고 대중교통이 마비돼 뉴욕 경제는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연말 대목을 놓치게 된 백화점.호텔.레스토랑 등이 집중 타격을 받고 있다. NYT는 "백화점 매출이 예년의 5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 당국은 하루 4억4000만~6억6000만 달러의 경제 손실이 날 것으로 전망했다. 뉴욕 대중교통 노조가 파업하는 것은 80년 11일간의 파업 이후 25년 만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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