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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전직 게릴라·군인 2만명 이라크서 미국 기업 '용병' 활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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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의 민간군사기업(PMF)들이 이라크에서 제3세계 출신 '용병'들을 대거 고용해 갖가지 사업을 벌이며 달러를 챙기고 있다. [중앙포토]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들이 중남미에서 전직 게릴라와 군인을 대거 고용해 자체 경비와 이라크 저항세력 소탕에 활용하고 있다고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최근 보도했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어한다는 중국 고대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 21세기 이라크에서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미국의 에너지.군수 기업인 핼리버튼은 콜롬비아에서 수백 명의 전직 게릴라와 군인 수백 명을 채용했다. 이들은 핼리버튼이 복구 중인 이라크 석유 시설에 배치돼 외곽 경비를 맡고 있다. 핼리버튼은 딕 체니 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대선에 출마하기 전인 1995~2000년 최고경영자(CEO)로 근무하던 회사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재 이라크에는 콜롬비아.과테말라.칠레.페루에서 모집한 1만5000~2만여 명의 현대판 용병(傭兵)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이라크에 주둔 중인 한국군(3200명)과 영국군(8500)을 능가하는 규모로 미군(16만 명)에 이어 '랭킹 2위의 주둔군'이다.

중남미의 전직 게릴라, 군인들이 이라크행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중남미의 IPS 통신에 따르면 페루의 전직 군인이 공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할 경우 12시간에 8달러를 받는 반면 이라크에서 근무하면 하루에 35달러를 받는다. 만일 그가 좀 더 위험한 임무를 담당할 경우 하루에 수백 달러를 벌 수도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제3세계 출신 용병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여론을 의식한 측면도 강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피터 싱거 연구원은 "미군이 이라크에서 전사하면 신문에 나지만 중남미 용병이 사망하면 흐지부지된다"고 말했다.

'블랙워터' '트리플 캐노피' '글로벌 리스크' 같은 민간군사기업(PMF)들은 용병을 활용해 이라크 현지에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육.해.공의 모든 안전 보장'을 내세우며 정부기관은 물론 외국 기업, 비정부기구(NGO), 언론사들을 주고객으로 요인 경호, 물자 수송, 시설 경비, 식량 공급을 담당하며 달러를 챙기고 있다. 그린베레 같은 미국의 특수전 출신 지휘관급 인사들은 일당 1000달러(100만원)를 받기도 한다. 바그다드를 방문한 한 일본인 고위인사는 자동차로 15㎞를 이동하면서 민간군사기업에 3000달러를 지불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도 민간군사기업의 큰 고객 중 하나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미 정부는 이라크 사태를 포함해 지난 10년간 민간군사기업과 3000여 건의 용역계약을 했다. 이 때문에 민간군사기업들은 정부 계약을 따내기 위해 워싱턴 정계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블랙워터는 최근 워싱턴의 막강한 로비업체인 '알렉산더 스트래티지 그룹(ASG)'과 로비계약을 했다. 그런데 이 로비업체는 미 공화당의 실력자인 톰 딜레이 전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의 보좌관이었던 에드 버크햄이 운영하고 있다. 딜레이의 부인 크리스틴 딜레이도 이 회사 직원으로 등재돼 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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