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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농촌이주지원…자립대책막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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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골로 가기만하면 생업자금에 경작지도주고 빈집도 마련해 준다다니 뭐 한가지라도 제대로 지켜진게 있어야지….』
서울에서 살다가 지난해 12월19일 충남아산군온양읍모종3구379의36으로 이주한 지청식씨(33).
농업이주를 왔으나 농사를지을 땅은 물론·빈집도 구하지못해 4식구가 월3만5천원씩의 월세방에서 부인 김인자씨 (27)가 읍내 미용재료상에 취직해 받는 월10만원씩으로 생계를 꾸려가고있다며『어떻게든 돈이 모아지면 정부에서 준돈(이주비·생활준비금등) 을 되돌려주고 서울로되돌아 가야겠다』고 울먹였다.

<정책빈곤 드러내>
「대도시의 영세민이 잘 살수 있는 길은 농어촌으로 이주해 자립하는 길뿐이다」 며서울·부산등 대도시 영세민지방이주 사업이 시작된지 만2년(82년7월1알부터 시행).
이주를 촉진키위해 이주민들에게는 이주비 20만원, 생활준비금 60만원(84년기준) 및 이주지에서 생업자금 융자2백만원과 농경지, 임야를 불하해주거나 대여해준다고 했다.
그밖에 빠른 시일안에 자립할수 있도록 새마을 특별지원자금으로 가구당 1백만원씩 무이자로 융자해주고 취로사업장 우선알선등도….
그러나 이주사업이 시작된지 만2년을 맞아 온사취재팀이 곳곳에서 만난 그들의 상당수는 『이럴줄 알았으면 빌어먹더라도 그대로 눌러앉아 있는 건데 속은 내가잘못이지…』 식의 자탄속에 자활의 의지를 잃고있었다.
더러 성공한 사례도 있으나 구호만 거창하게 외쳐대고 뒤치다꺼리를 제대로 하지않는 당국의 공수표(공수표)와 실적을 올리려다보니 노동력을 잃은 중병환자·불구자·노약자까지 동원한 이주대상자 선정문제·손발안맞는 행정과 정책빈곤등이 이주사업의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구호양곡 받기도>
최해도씨(45·경남김해군대동면초정리198)는 오래전부터 폐결핵 중증환자로 노동을 할 수 없는데도 서울시에서 권유, 82년8윌5일이주했다.
노모 박귀선씨 (44) 와 세자녀(6·13·15살)뿐으로 노동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 생업자금은 아의 융자신청도못했다.
서울시에서 받은 이주비와 생활준비금 30만원도 이미 다 써버려 군에서 주는 양곡·부식비·연료비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는 중.
서울에서 살다 82년9월18일 경북왜관으로 이주한 김옥정씨는 이주당시 이미 81세의 노약자.
김씨는 지난 5월7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부인 홍재현씨 (54) 만 남아 친척 조카의 밭 1천여평을 빌어 대리경작하고 있으나 1년수입은 고작 30만원 정도.
홍씨 역시 생활보호대상자로 보호중이다.
경북금능군대정면주례동 134 변남규씨 (64) 는 중풍으로 사지가 마비인데다 장남 종복씨 (24) 는 폐결핵환자로 노동력 상실자.
차남 종국군 (16) 마저 정신이상으로 가출해 버리고 현재 방2칸, 부엌1칸의 빈집에 들어 구호양곡으로 끼니를 잇고 있으나 생활준비금으로 받은 60만원은 이미 바닥이 나 버렸다.
상주군화서면상현리91 신선균씨 (55)는 폐결핵3기에 왼쪽다리를 못쓰는 불구자.
『동장(서울신림10동328)이 이주하면 특별대우릍 받고 여생을 편안히 보낼수있다』 고권유해 이주한 케이스다.
서울거주당시 생활보호대상자이던것이 이곳에서는 거택 (거핵) 보호대상자로 명칭만 바뀐채 군에서 매달 구호양곡과 부식비를 지급받고있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생활보호를 받아야할 대상자인 경우다.

<융자신청도 거절>
해마다 설정되는 이주목표를 채우기 위한 숫자 메우기놀음행정이 불구·페질·노약자동 노동력이 없는 사람이나 알콜중독자· 떠돌이등 자활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농촌으로 보내고 있었다.
경남 의창군북면대전리406의2 진기양씨(57).
『시골에는 안가겠다』고 버티던가족들을 오랫동안 설득해 지난달 9일 부산에서 이주, 28일 의창군단위농협에 생업자금 2백만원 융자신청을 냈으나 보증인이 2명이 안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해 못받고 있는 상태(6월21일현재)
부산을 떠나올때 시에서는 현지에 가서 신청만하면 담보나 보증인없이 생업자금이 나오도록 되어있다고 했으나 그것은 도시행정기관만의 약속일뿐 이주지에서는 융자조건을 업격히 요구했다.
연고지가 아닌데다 담보물이 있을리없는 진씨는 마을이장과 주민1명등 2명을 보증인으로 내세웠으나 뒤늦게 이장이 『못믿겠다』 며 보증서기를 철회했고 단위농협 역시『어떻게 믿고 융자금을 주느냐』 며 융자를 거절해 이주때받은 생활준비금(60만원)을 앉아서 까먹고 있다고.
김증순씨 (59·여· 경남의창군진동면신기리537) 역시 마찬가지 케이스.
지난해 8월8일 부산에서 이주해 왔으나 보증인이 없어 생업자금융자를 못받고있다.
아들 임창수씨 (27) 는 정신병으로 김해요양원에 수용중이어서 김씨 자신이 남의밭6백10평을 대리경작 해주고 연명하고있다.

<영농기술등 없어>
영농경험이 없어 본래의 목적을 떠나 행상·날품팔이·가정부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박재호씨(47·노동)는 지난해 8월30일 부산에서 가족8명을 데리고 이주, 생업자금융자 2백만원에 생활준비금 30만원을 보태 당시 1년생이 안된 한우 두마리를1백15만원씩에 구입했다.
그러나 1년이 가까운 지금 축산에 경험이 없는데다가 소값마저 크게 떨어져 30만원 이상의 손해를 보았다고푸념.
하는수 없이 부인 정수자씨 (41) 가 비닐하우스 날품팔이로 하루 3천∼4천원, 박씨는 군에서 새마을사업으로 하고 있는 도로공사장에나가 하루 8천원씩 벌어 9식구가 연명하고 있으나 그나마 일거리가 매일같이 없어 살길이 막막하다고.
서울서 지난달25일 제주도서귀포시서귀동721로 이주한 김다남씨 (35· 여) 는 더욱 딱한 처지.
딸2명중 중2년생 (15) 인 큰딸의 전학신청을 서귀포교육청에 냈으나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지않아 놀고 있는 실정(지난 20일 현재).
담보가 없어 생업자금융자도 받지 못한데다 이주비·생활준비금으로 받은 80만원도 이사비에 거의 다 써버렸다.
2평짜리 지하단칸방에서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고있으나 시청이나 동사무소에서는 아예 외면, 라면으로 연명하고있다.
82년8월13일 대구에서 경북월성군강동면 다산리278로 이주한 배효건씨 (49) .
대구에서 이주명령을 받자 부인 김모씨(37)는『시골에서는 살수없다』 며 집을 나가 버렸고 학교에 다니는 아들 셋(10·14·16살)과 대구 모 방직공장에 다니는 맏딸(20)은 대구에 그대로남겨둔 채 혼자만 이주를 했다.

<시골선 못살겠다>
자신은 간질환으로 노동력이 없어 생활보호대상자로 구호양곡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서울 구로3동에서살다 경북 금능군귀성면송죽2동115로 이주한 김유홍씨(44)의 경우 심한 당뇨병으로 누워있던중 지난3월 동사무소에서 이주를 권유받았다.
당장 벌이가 없던때라 이에 응낙, 장남과 장녀는 서울에 두고 막내아들 (10) 만데리고 내려와 군에서 받은 생활준비금 60만원을 자녀학비와 자신의 약값에 보태쓰고 매달 백미35kg·보리쌀17kg의 구호양곡으로 끼니를잇고 있다.
생업융자금2백만원은 농협에 예치해두고 있다고 하나『이 돈마저 언제 꺼내쓸지모른다』 는것이 군복지계직원의 얘기.

<보증선사람 곤욕>
지난해 12월29일 부산에서 경북 안동군와룡면산야동956으로 이주했던 배호석씨(45)는 외아들 선영군 (4) 만 데리고와 생활준비금 30만원과 부산에서 이사비 20만원만받아 하루만에 자취를 감춘 케이스.
82년7월23일 대구에서 경북 영천군화산면연계리631로 이주했던 김옥순씨(52).
이주비 20만원·생활준비금30만원·생업자금융자 1백만원을 받아 주민등록은 그대로 남겨둔 채 어디론가 가버린 상태.
융자를받아간 생업자금은 보증을 선 윤진홍씨(53·대기리631) 가 지난해11월부터 대신 갚아 나가고있다.

<젖소·돼지 길려>
안중춘씨 (43·경북예천군호명면직산1동108) .
작년3월 부산시청학2동28에서 부인 장원임씨 (37) 와 슬하의 2남4녀등 일가족8명이 이주, 부재지주의 논25마지기 (5천평) 와 밭10마지기 (2천평) 를 대리경작, 온가족이 농사일에 매달린결과2백만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이에 용기를 얻은 안씨는 올해 경운기1대를 사들였고 생업자금 2백만원을들여 젖소세마리, 도입육우 한마리, 돼지31마리를 사육, 복합영농의 기수로 주민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있다.
지난4월27일 고향으로 내려간 안재삼씨(37·전북부안군줄포면대동리 대연부락478) 도 비교적 쉽게 농촌생활에 적응, 정착한 케이스.
지난해 8월 이주비20만원과 생활준비금80만원을 받아 고향에 내려온 안씨는 어머니 양경순씨 (57) 가 지키고있던 집으로 입주, 논1천5백평과 밭2천5백평(국유지)을 일구면서 정착기틀을 마련했다.
생업자금2백만원과 함께자금 1백만원을 지원받아 송아지네마리를 구입, 희망에찬 내일을 일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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