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05 문화계 - 학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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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의 '황우석 쇼크'를 제외하면, 올해 한국 사회와 학계를 출렁이게 만든 키워드는 '과거사'였다. 국내 차원의 각종 '과거사 정리'는 물론 일본.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도 과거사 이해를 둘러싼 시각 차이는 갈등의 핵이었다.

◆해방 60주년과 과거사 공방전=올해는 해방 60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40년, 을사조약 100년을 맞는 해다. 한.일 관계의 새 전기를 기대해 볼 만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후소샤판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잇따라 벌어졌고,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이어지며 '한일 우정의 해'는 빛이 바랬다.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버린 것이다.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기념해 6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가 그 예다. 양국 학자들은 자주 만나 대화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대안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하며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희망적인 결실이 하나 있다.'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상임공동운영위원장 양미강)의 주도로 한.중.일 3국의 역사학자.교사.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온 결과, 3국 공동의 근현대사 부교재인 '내일을 여는 역사'를 올해 펴냈다.

국내적으로는 일제시대의 친일 행위에 대한 청산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8월에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3090명을 논란 속에 발표했다. 12월에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으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가 출범했다. 지난 100년 간의 한국 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심판할 기세다. 언제까지 과거사에만 매달려 국력을 낭비할 것이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과거사를 둘러싼 이념 공방전이 내년에도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뉴라이트 세력의 약진='과거사 정리' 세력의 건너편엔 '과거와의 화해'를 외치는 뉴라이트(신보수)가 자리잡았다. 뉴라이트는 지난해 말부터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소규모 지식인 모임인데, 목소리가 한 해 만에 부쩍 커졌다.

기존의 보수세력이 독재와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면서 뉴라이트는 출발했다. 과거와의 단절과 청산 대신에 화해와 포용의 깃발을 내걸며 '과거사 청산'세력에 맞서고 있다. 두 세력은 일제하의 친일 문제, 해방공간의 단독 정부 수립, 그리고 60~70년대 초고속 경제성장의 명암 등 과거사를 놓고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운다.

대개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두 세력 간의 이념 논쟁을 지켜 보면 하나가 아닌 두 개의 역사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운동권 출신의 젊은 지식인들이 한때 심취했던 사회주의 이념과 선을 그으며 뉴라이트 이론틀을 형성해 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과거사 공방의 한가운데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단일 민족'의식의 뿌리가 깊은 한국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성역과 같았다. 하지만 요즘은 민족주의 앞에 대개는 '열린'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다른 가치를 모두 배격하고 나만 옳다고 하는 '닫힌 민족주의'의 폐단에 공감하는 이들이 느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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