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우량주' 넥센 유한준, 그가 소리없이 강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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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 선수 [사진 일간스포츠]

프로야구 홈런 순위표를 보면 낯선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넥센 외야수 유한준(34)이다. 그는 올 시즌 홈런 8개로 테임즈(NC)·나바로(삼성·이상 9개)를 1개 차로 뒤쫓고 있다.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팀 동료 박병호(6개)보다 홈런 페이스가 빠르다.

유한준은 28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3-4로 뒤진 6회 말 롯데 이상화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좌중간 펜스를 넘기는 역전 투런포를 터뜨렸다. 이에 앞서 유한준은 지난 21일 목동 두산전에서 김현수가 친 타구를 잡기 위해 슬라이딩을 하다 무릎을 다쳤다. 일주일 동안 자리를 비운 그는 돌아오자마자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는 "쉬는 동안에도 타격 메커니즘을 생각한 것이 홈런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른넷 유한준의 기량은 올 시즌 만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번 또는 5번, 중심타선에 배치되는 그는 20경기에 나와 타율 0.368(3위), 장타율 0.838(1위), 22타점(5위), 8홈런(3위)을 기록하고 있다. 오른손 타자인 그는 좌·우 가릴 것 없이 홈런을 때리고 있으며, 솔로 홈런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순도도 높다.

유한준은 프로야구에서 '저평가 우량주'다. 지난해 그는 3번 타자를 맡아 타율 0.316, 20홈런, 91타점으로 수준급 활약을 했다. 그러나 'MVP 후보' 서건창·강정호·박병호에 가려 활약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순둥이 이미지도 한 몫 했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처럼 그저 착해보이는 이미지로 손해를 봤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소리없이 강한 남자'라는 칭찬을 듣고 있다. 그는 "그냥 내 스타일"이라며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하다 보면 알아줄 거란 생각으로 야구를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데뷔한 그는 4년을 후보 선수로 지냈다. 타격·수비·주루 모든 면에서 소질을 보였지만, 어느 하나 특출난 것도 없었다. 그러다 2007년 말 상무 야구단에 입단하면서 기량이 부쩍 좋아졌다. 2010년에는 넥센의 주전 우익수로 성장했다.

그러나 뜻밖의 부상이 찾아왔다. 빨랫줄 송구가 장기인 그는 2011년 시즌 막판 송구를 하다 팔꿈치를 다쳤다. '뚝'하는 소리가 들렸는데도 참고 경기를 뛴 것이 화근이 됐다. 오른 팔꿈치 내측 인대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수술 이후 재활로 7개월을 보냈다.

부상에서 돌아온 그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2012년 72경기, 2013년에는 97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서른 살에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다시 백업 선수로 떨어진 것이다. 그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이를 악물었다. 체중을 10kg 가까이 늘리고, 무거운 배트를 사용하면서 파워를 기르는 데 열중했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독하게 준비한 그를 중용했다. 유한준은 최강 타선의 당당한 3번 타자가 됐고, 지난해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선 2홈런 5타점으로 MVP급 활약을 펼쳤다.

올 시즌이 끝나고 그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다. FA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기 위해서라도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방망이를 휘두른다. 강정호가 미국으로 떠나고, 서건창·이택근 등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에도 염경엽 감독이 웃는 이유가 있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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