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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대 의혹 눈치채고 번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5·16주체들의 내부투쟁은 사전조직을 둘러싸고 불이 붙었다. 62년이 저물던 l2월23일 워커힐에서였다. 김종필은 이영근을 데리고 나가 최고위원들 앞에서 사전조직을 브리핑했다. 극비의 지하조직 재건동지회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었다. 김종필은 말했다.

<5·16주체들이 기성정치인과의 선거경쟁에서 승리해 민간정부를 이끌어갈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기본조직을 짜놓아야 했다. 최고위원들에게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알릴 수 없었다. 정치활동금지라는 포고령이 있던 때여서 책임을 극소화하겠다는 결심으로 극비리에 조직을 한 것이다. 양해를 바란다.>
그랬지만 양해한 사람은 소수였다. 사전 조직된 기간요원이 당의 중심부가 될 사무국을 장악한다는 것. 즉 JP부대가 당의 중심이 된다는데 대해 볼멘소리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술자리서 불만폭발>
그래도 질의 응답때는 토론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술자리로 넘어가면서 끝내 불만이 폭발했다. 김동하 김재춘 오정근 강상욱 등은 박수부대나 되는건 못하겠다고 했다. 길재호 김형욱 옥창호 등은 JP부대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고 지도부 구성은 이제부터 시작이 아니냐고 했다.

<목숨을 걸고 한강을 넘었으면 행동도 같이 해야지 동지들을 따돌려 놓고 정당을 몰래 조직해….>

<비밀리에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그만큼 설명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너희들끼리 독점하겠다는 얘기지 뭐야.>

<누가 독점한다고 했어. 국회의원 한자리씩 보장한게 어딘데….>

<뭣이 어째. ××당식으로 조직하고 불순한 자금으로 돈을 물쓰듯하고….>
끝내 고함이 높아지고 주먹으로 상을 치고 안주접시가 날았다. 군정기간 쌓여온 김종필과 반김종필 세력간의 대립이 격돌의 바닥에 깔려있었다.
5·16주체의 격심한 내부투쟁은 거칠게 막이 올랐다. 그랬지만 이때만 해도 다툼은 숨겨진 장막 뒤의 일이었다. 1월12일 정구영이 공화당으로 가던 때는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고 했다. 그런 내부투쟁은 상당한 시일이 지나서야 그것도 차츰차츰 짐작을 하고 눈치로 알았다고 했다. 이제 삼영빌딩의 정구영으로 얘기를 돌려보자.
『김종필은 혁명초기에 인사한 적이 있어. 최고회의 내무분과위원장이라는 조시형 또 이석제 법제사법위원장이야. 그리고 길재호군 모두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야. 그외에 최고위원 한두사람 더 있었어. 그들이 모여 앉아서 점심에 나 조진만 그외 변호사협회 간부들 6∼7인을 초대한 적이 있어. 인사동 어느 방집이야. 혁명을 자기들이 좋아서 한 것이 아니고…구국을 해야겠다, 사회혼란 이것 바로잡자는 뜻에서 했으니 선생님들이 이해해 주십시오. 결국은 우리들에게 혁명에 대한 이해를 요청한다는 취지의 회합이었어. 그때 김종필씨 말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었어.
미국의 대한정책에 관한 얘긴데… 나도 해방 후에 미국사람들이 한일에 있어 더러는 비판적인 눈으로 보아오던 사람이야. 그런데 그 말이 퍽 내 심정을 자극했어. 저양반 제정신 차리고 얘기하는 것인가… 나는 그때 군인에 대한 평가가 퍽 얕았다. 해방후에 군대간 사람들에 대해서…. 그랬는데 젊은 청년사관으로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또 그가 핵심인물이라는건 듣고 있었고, 그래 그 사람 그 한마디에 뜻밖이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었지. 1월12일 삼영빌딩에 가서 만났는데 김종필 그 사람도 나를 기억하고 있더군.
그래 반갑게 인사를 했지. 발기인들 몇 모아서 창당준비작업을 하는 중이었는데 그날이 3차회합이라는거야. 내가 12번째지. 김종필 김동환 윤일선이 죽해서… 그 뒤에도 이사람 저사람 자꾸 늘어서 창당발기인이 40여명, 60명으로 계속 늘어났어.
발기인들은 자동적으로 창당준비위원이 되고 또 하나 앞에 배수를 추천한다고 하는 식인가, 소위 양심적이고 참신한 정치인자격을 가진 사람들로 제한해서… 세대교체라는 것은 구정치인을 일시에 배격한다 그런 의미는 아니다. 구정치인 가운데도 엘리트들은 우리가 포용해야지 여기에 딱 벽을 쌓아가지고는 안된다 그런 얘기가 나와서… 과거에 욕먹은 일이 없는 사람들, 앞으로 정직하고 진지하게 조국에 공헌할 사람들을 추천한다 그래 가지고 1월l8일 창당준비위원회를 조직했는데 김종필씨가 창당준비위원장이고 내가 부위원장에다 연락분과위원회도 책임을 맡았어. 김성진이 운영분과위원회를 맡고… 그렇게 발족을 했어.

<"저거 형사아니냐">
이래가지고 매일 나갔는데 드나드는 사람이 젊은 사람들이야. 김창근이라는 대학선생이 회의장을 들여다보는데 나는 그를 형사인줄 알았어. 그래 <저거 형사 아니냐>고 하니까 김동환군이 <아닙니다. 엘리트입니다. 여기서 많은 일을 하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런일도 있었어….
규약제정, 창당발기문, 선언서 등도 만들고 지방에도 준비위원회 지부를 두는 것, 이런일을 해나가는데 가만히 보니까 그 사람들은 사전에 그런 구상들을 해서 추진이 이미 되어있는 것 갈았어.
우리가 참여해서 우리두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야. 말은 연락위원장이라는게 조직책임자라고 했는데 그게 한갖 쇼라는 것도 처음엔 생각지 못했지. 그냥 막연하게 받아들였어. 사인하라면 사인하고….
내가 염려한 것은 정당조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도대체 돈이 어디서 나오는거냐. 그래 김종필씨한테 <정당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게 걱정이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정치를 하면 많은 사람들의 기부가 있읍니다. 그러니 걱정마십시오. 저희들이 잘못하는 것 있으면 얘기해 주십시오> 하는 대답이야. 그래서 나는 그걸 선의로 해석했지….

<"정당조직은 쇼">
그랬는데 야당측에서도 그러고 최고회의에서도 그러는데 4대 의혹사건이라는게 자주 얘기가 나와 사전조직 그걸 재건동지회라고 했다든가… 각 지방까지도 사전조직을 해놓고 있다.
그러니 정당만든다는건 쇼고 사전 조직한 것을 확대강화해서 차기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야당은 발묶어 놓고, 자기들은 사전조직하고…. 그러면 형평의 원칙에 벗어나… 잘못이야.
나는 그때 퍽 고민을 했어. 순수한 정의의 입장에서 내가 여기에 가담을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에 대해서…. 비로소 나는 구차한 변명일는지 모르지만 내 양심과 내 행동 사이에서 타협을 했다.
정치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쇼 비슷한 것도 필요하지 않겠느냐, 융통성…. 지금도 나는 융통성 없는 인간이라고 비난을 받지만… 그래 그 융통성이란걸 생각했어. 그때는 김종필씨 말만 믿고 자금문제는 상당한 기부도 있을 수 있겠다, 이런 생각만 하고 나는 그런 것은「노터치」하고 해나가는데 4대 의혹사건 얘기가 자꾸 나오니까 정치자금을 염출하는데 무리가 있었던 데다 그게 무어냐 나는 부정에 뒤섞여서는 안되겠다는 법률적 양심에 또 고민하게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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