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과 노인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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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재율<전남대교수·농촌사회학>
한국가족의 이념형이 친자중심가족 또는 직계가족이라고 한다면 우리사회는 지금 가족해체의 전야에 있고, 한편 부부중심가족·핵가족이 이상적 가족형태라고 한다면 우리는 가족변동의 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늘 한국의 노장년층은 전형적인 친자중심가족의 가족관계를 맺고 살아왔다. 그들은 그들의 청장년시절 노부모에게 바쳤던 효성만큼 자기들의 노후에 자녀들이 봉양해줄 것을 기대하고 노후생활을 위한 준비 없이 오직 자녀를 위해 살아왔다.
그러나 요즈음의 일부 청년부부는 노부모의 기대를 의식하지 아니하고 부부중심으로 가족생활을 영위하려는 경향이 농후하다.
여기에 친자윤리의 갈등을 묘사한 예를 들기로 한다. 빈곤한 가정의 아들이 편모의 보따리장사·채소장사로 이어지는 피눈물나는 고생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고시에 합격한 후 일류대학을 나온 부자집의 외동딸과 결혼하였다. 혼수도 몽땅 해왔다.
이 신부는 거리에서 채소장사를 한 과거의 시어머니 고생을 의식함이 없이 영광스러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후, 그러한 조건으로 남편과 결혼하였으므로 편모인 시어머니의 지난날의 노고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부부만을 중심으로 비교적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고, 그럼으로써 고부간의 갈등을 빚고 있다. 그 모친은 현대가족이 부부중심 가족이므로 보따리장사 등을 계속하면서 자족하고, 자녀부부의 행복만을 기원하고 살아야할 것인가.
우리사회는 가족윤리의 급변으로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다수의 불행한 노인군을 볼 수 있다. 여러 자녀중 아무도 부양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기도한 노인이 있고, 노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것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고 결국 이혼하는 예도 볼 수 있다.
우리사회는 지금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당면과제가 많다. 경제성장·사회적 안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노인문제도 그에 못지 않게 우리세대가 해결해야할 과제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사회가 살기좋은 사회가 되는 기본적 조건의 하나는 노후가 보장되어서 노인들이 불안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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