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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폭도, 한인 상점 약탈 … 'LA 폭동'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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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경찰 구금 중 숨진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의 사망과 관련한 시위가 27일(현지시간) 대규모 폭동으로 악화됐다. 이날 오후 그레이의 장례식이 끝난 뒤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해 시내 곳곳에서 약탈과 방화가 이어졌다. 도심이 무법천지로 변하며 일부 한인 가게들이 시위대에 약탈되자 ‘제2의 LA 폭동’ 사태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1992년 백인 경찰들의 흑인 집단 폭행으로 촉발된 LA 폭동으로 한인 업소들이 집중 약탈·방화됐었다.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는 이날 볼티모어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 경찰과 인근 경찰 병력 5500여 명을 긴급 배치했다. 주 방위군도 이날 밤 투입됐다. 스테퍼니 롤링스-블레이크 시장은 이날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다음주까지 이어질 통행금지령은 어른은 밤 10시부터 그 다음 날 새벽 5시, 14세 이하는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을 금지했다. 공립학교에도 28일 임시휴교령이 내려졌다.

이날 폭동은 뉴실로 침례교회에서 열린 그레이의 장례식이 끝난 뒤 시작됐다. 학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한꺼번에 볼티모어 북쪽 몬다민 쇼핑몰 부근에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곤봉과 헬멧, 방패로 무장한 경찰과 충돌하자 돌멩이와 벽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15명이 다쳤으며 이 중 2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1명은 혼수상태라고 경찰은 전했다.

 시위대는 경찰 순찰차를 부수고 불을 질렀다. 또 인근 상점 유리문을 깨고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약탈했다. 급기야 약국 체인점인 CVS에 불을 질러 시커먼 연기가 도심을 뒤덮었다. 시 당국은 폭동으로 15채의 빌딩과 144대의 차량이 불탔고 200여 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볼티모어 시내 한인 업체도 초긴장 상태다. 볼티모어 일원에는 1000여 개의 한인 업소가 있다. 시위가 집중된 볼티모어 북쪽 노스애비뉴 거리는 80%가 한인 가게들이다. 한인 오모씨의 주류 판매점이 시위대들에게 약탈됐다. 메릴랜드 한인식품주류협회 송기봉 회장은 “폭동이 일어나면서 대부분 일찍 가게를 닫고 철수했다”며 “통행금지까지 겹쳐 정확한 피해 규모는 날이 밝아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한인들은 가게가 약탈됐다는 소식에 발을 구르고 있다. 도심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이광서씨는 “인종 간 갈등에 한인 상인들만 애꿎게 피해를 보고 있다. 일부는 총이라도 들고 가게 앞에서 재산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폭동 사태로 연방정부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날 임명장을 받은 첫 흑인 여성 법무장관인 로레타 린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볼티모어 사태를 보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롤링스-블레이크 볼티모어 시장과의 통화에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볼티모어 캠든 야드에서 열릴 예정이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미 프로야구 경기도 2001년 9·11 사태 이후 처음으로 안전을 이유로 취소됐다.

 볼티모어에서는 1968년 4월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이후 폭동이 잇따랐다. 당시 폭동으로 6명이 숨지고 1000여 개 업소가 약탈당했으며 1200여 건의 방화도 발생했다. 재산 피해액은 1200만 달러, 폭동으로 700여 명이 중경상을 입고 5800여 명이 체포됐다. 당시 경찰과 주 방위군 병력 수천 명이 출동했지만 제압하지 못했다. 결국 주 정부는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연방 군대 출동을 요청해 가까스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한편 그레이는 지난 12일 오전 경찰에 붙잡힌 뒤 이송 중 목 부위 척추를 다쳐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일주일 만에 숨졌다. 그레이 사망에 항의해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지다 지난 24일에는 2000여 명의 시위대가 시청 앞에서 시내로 행진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해 폭력사태로 번져 모두 34명이 체포됐다.

볼티모어=허태준 워싱턴 중앙일보 기자 heo.taejun@koreadaily.com

사진 설명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며 1992년 ‘LA 폭동’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경찰 구금 중 숨진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의 장례식이 열린 27일(현지시간) 분노한 흑인 청년들이 경찰차에 올라가 항의하고 있다(사진 1). 한 흑인 청년이 불타는 경찰차를 뒤로한 채 걷고 있다(사진 2). 폭도들이 약탈한 물품을 들고 상점을 나서고 있다(사진 3). [볼티모어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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