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준비하는 한국·유럽] 4. 건강한 생명사회 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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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0면

각국의 과학기술정책 중에 건강사회 구현이라는 정책 지표는 항상 상위에 놓인다.

21세기를 대비해 유럽의 미래기술연구소에서 작성한 '유럽의 번영을 위한 5대 비전'과 우리나라 국가기술지도인 '2012년 과학기술기반사회를 위한 5대 비전'에도 '건강한 생명사회 지향'이라는 동일한 정책 목표가 포함되어 있다.

유럽인들은 현재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건강한 수명을 누리고 있긴 하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은 앞으로 신체적 위협이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더욱 감소된 건강사회에서 삶을 살고자 하는 개인들의 희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 같은 비전을 설정했다.

효율적인 보건의료체계의 설계와 관리, 새로운 의료기술 활용, 포스트 지노믹스 시대에 첨단 바이오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신산업의 발굴과 육성 등을 그 목표로 삼고 있다.

EU 국가의 보건의료비는 1970년 국내 총생산(GDP) 대비 5.3% 수준에서 2000년에는 9%로 증가했으며, 2020년까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40%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준비에 정책목표의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EU는 비전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수요 지향형 과학기술 과제와 미래기반형 과학기술 과제로 구분하고, 단기간 내에 수요가 증가할 노인학.예방의료.e-건강의료.세포조직공학.개인의료정보 관리 분야에 정책지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원격치료.체세포복제.장기이식.생체소재 개발 등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치료보다 예방의료를 중시하는 미래 사회로의 전환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미래기반형 과학기술 과제로는 유전자 기술 범주에 속하는 단백질체학.형질전환동물 모델.약물유전학과 생물정보학 분야의 첨단기술 개발을 중점 지원할 계획이다.

각국마다 분산 연구수행에 따른 중복노력과 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첨단기술의 효율적이고 신속한 정착을 위한 협동연구, 임상시험 연결망 구축 및 연구결과 공유체계를 만들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이를 통해 첨단기술 적용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윤리문제와 상호 학습, 지식공유 체계 개발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는 건강한 생명사회 지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12년까지 2개 발전 방향을 설정했다. 그 하나는 유전자치료 등 6개 영역에서 질병의 예방.진단.치료의 혁신이며, 나머지는 항암제 등 7개 영역에서 새로운 의약개발과 산업화다.

선진국에서는 각 유전자의 기능을 파악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전자 해석 기술, 생물정보학과 단백질체학의 도입으로 유전자의 기능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파악해 가면서, 인간의 생명현상에 관계하는 각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려는 것이다. 이미 그 성과도 상당히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수정란으로부터 아기의 분화-발생 과정, 기억현상을 포함하는 뇌 신경계와 노화현상 등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생체기능을 바람직하게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각종 난치병들의 예방과 치료법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정상이 아닌 결함유전자들의 작용으로 생기는 암이나 유전질환.고혈압.당뇨병.치매, 그리고 각종 정신질환 등의 원인 유전자나 이러한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 등을 찾아내면 난치병 정복도 가능할 전망이다.

병을 직접 일으키지는 않지만 특정 질병에 걸리기 쉬운 체질을 만드는 유전자는 특정 유방암 유전자를 필두로 대장암, 당뇨병, 신경 정신 질환 등에서 속속 발견되고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런 감수성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특정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환경을 피하게 하고, 질병의 발병 초기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약개발 분야에서도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약효가 듣는 유전자 수는 5백개 미만이나 앞으로 유전자기능 연구를 통해 약 1만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이용하면 신약으로 검색할 후보 화합물을 유전자 활성 측정시험을 통해 짧은 기간에 찾아 낼 수 있다.

또 유전자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새로운 개념의 의약품이 대거 개발될 것이다. 이들은 각종 질환의 진단.예방.치료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알츠하이머병.천식.유방암. 심장질환 등은 지금까지 대증요법만이 가능했다. 그러나 머지않아 유전자 수준에서 발병 과정을 규명해 그 예방은 물론 원인치료까지 가능한 시대가 온다.

또 개인별 유전자 검진으로 특정 질환의 발병 가능성, 약물대사.알레르기 등의 부작용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환자마다 치료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극소화하는 특정 치료법의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 이같은 맞춤 치료와 의약품의 개발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치료법이 향후 10년 정도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욱 박사.유한화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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