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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아베 만날 것" … 아침부터 학생 100명과 정문 침묵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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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저는 일본에 끌려가 성노예 피해를 당한 이용수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 이틀째인 27일(현지시간)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정문 앞을 지켰다. 케네디 스쿨 강연이 예정돼 있는 아베 총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령의 이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아베 총리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의 조우는 없었다. 아베 총리는 다른 문으로 들어갔다.

 짧은 즉석 기자회견. “나는 열다섯 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 위안부가 됐습니다.” 이 할머니의 절규가 보스턴 거리를 울렸다. 이 할머니는 “거짓말만 하는 아베를 만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원망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이 할머니는 마스크를 쓰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침묵시위를 시작했다. 100여명의 하버드대 학생도 동참했다. 학생들의 손에는 ‘당신이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Your denial is killing them twice)’ ‘역사는 다시 쓰여질 수 없다’ ‘위안부 피해자에게 정의를’이란 피켓이 들렸다. 학생들은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전단을 돌렸다. 프리얀카 나라얀(하버드대 1학년)은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어 아베 총리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낭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성노예제 운용에 일본 정부가 직접 개입했음을 아베 총리가 인정하기를 촉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최미도(21) 학생과 클로딘 조(22) 학생이 공동으로 작성한 서한엔 하버드 한인연합, 하버드 대만문화협회, 하버드 필리핀포럼, 하버드 흑인학생연합 등 18개 학생단체와 160여 명의 학생이 서명했다. 하버드 학생단체들이 연대 서명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한 것은 처음이다.

 이 할머니는 전날 하버드대 교정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퐁(fong) 강당에 다양한 국적의 학생 70여 명이 모였다. 학생들은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이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강간당하고, 성노예가 됐던 끔찍한 삶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 할머니는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전기충격 등 갖은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몇몇 학생이 울먹이기 시작했고, 강당은 순식간에 학생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이 할머니도 목이 메었다. 이 할머니는 “울지 말라”고 학생들을 다독이면서 “울기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아베 총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여러분이 잘못된 역사를 배울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왜 위안부 문제가 20년 동안이나 해결되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행사가 끝나자 학생들은 한 명씩 나와 이 할머니와 껴안고 사진을 찍었다. “일본의 사죄를 받을 때까지 내가 오래 살아야 하는데….” 이 할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할머니는 보스턴에서 아베와 만나지 못한 채 워싱턴DC로 발걸음을 옮겼다. 29일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연설 때 청중석에 앉아 아베 총리를 바라볼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이 할머니를 똑바로 볼 수 있을까.

보스턴=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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