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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남북관계 새 동력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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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4일 장관급회담 전체회의에서 "제주도에는 거지.도둑.대문 세 개가 없다"고 하면서 "남북 관계도 대결과 가다 서다 하는 중단, 인도적 고통이 없는 3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남북 관계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세변화와 관계없이 남북 관계 발전을 꾸준히 제도화해 나가야 한다. 이미 남북 경협 부문에는 상당한 수준의 제도화가 이뤄졌다. 북한은 7월 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북남경제협력법'을 채택했다. 남과 북은 경협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10월 28일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를 개성에 개설했다. 한편 남측에서는 남북 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율한 최초의 법률이자 남북 간 평화 공존을 상징하는 법률인 '남북 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12월 8일 제정했다.

이러한 남북 관계 진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한 것은 북.미 갈등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북.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지 못하고 상호 불신과 대립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남북 간에는 공존에 합의하고 '제2의 6.15시대'를 열어 나가고 있지만, 북.미 간에는 아직 공존을 합의하지 못했다.

내년도 남북 관계의 주요 화두는 북핵과 인권 문제, 정상회담과 평화체제 구축 문제 등이 될 것이다. 핵 문제 해결의 열쇠는 북한으로 넘어갔다. 국제사회는 '9.19 공동성명'을 통해 다자안전보장을 약속하고 공을 북한으로 넘기고 관망하는 정체국면으로 들어갔다. 이제 국제구조를 움직이려면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선언 등과 같은 북핵 해결과 관련한 '주동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미국 협상파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음을 북한은 주목해야 한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을 '범죄 정권'이라 규정하고, 조셉 국무부 군축차관의 추가 경제.금융제재 고려 발언과 함께 "북한 정권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등 부시 행정부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처한 여러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1차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것처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구도가 정착하면 미국과 일본의 대북 접근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지 모른다. 정상회담이 이뤄지려면 최고지도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 진전이 어려웠던 것은 북핵 문제란 걸림돌과 함께 북한의 남한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실망, 그리고 남한의 북한에 대한 상호 신뢰 우선과 호혜주의에 입각한 태도 변화 요구 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간접화법의 정상회담인 '6.17 정동영-김정일 면담'은 정체됐던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위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9.19 공동성명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이제 남북정상회담을 서둘러야 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