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진실은…] "줄기세포 8개 맞춤형 확신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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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줄기세포를 누군가 바꿔치기했다"
사법기관의 수사를 요청한 황우석 교수. 최승식 기자
(오른쪽)"연구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
황 교수 주장을 반박한 노성일 이사장. 변선구 기자

황우석 교수팀에서 일하다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팀에 합류한 김선종 연구원이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줄기세포 연구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피츠버그=연합뉴스)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 연구실에 파견된 김선종(사진)연구원은 "2, 3번 줄기세포로 11개 줄기세포의 사진을 만들었으며, 이는 조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16일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나와 황 교수, 서울대 연구원 4명 등 6명이 매일 오전 6시에 만나 줄기세포 8개를 배양했으며, 당시에는 모두가 이 세포를 환자 맞춤형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 그 세포들이 미즈메디병원의 냉동 잉여 수정란 줄기세포라고 하니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검찰이 수사하면 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 이사장이 "김 연구원이 상사이자 교수(황 교수)의 회유와 협박에 직면했다는 것에 경악했다"고 했는데.

"황 교수가 최근 통화에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24일까지 올 수 있으면 셀 라인(줄기세포주)을 새로 만드는 것을 재연해 보고, 그게 안 될 경우(못 들어올 경우)에는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오늘 황 교수는 김 연구원이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한 것으로 의심하는 듯했다.

"내가 출입을 자주 하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도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답답하다.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면 응할 생각이다. 황 교수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김 연구원이 세포를 바꿔치기한 것 아닌가.

"그럴 이유가 없고, 하지도 않았다. 황 교수가 정황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나를 의심하자) 노 이사장이 화가 난 것 같다."

-김 연구원은 줄기세포를 직접 확인했나.

"황 교수도 얘기했지만 매일 오전 6시에 만나 셀을 봤다. 그런데 나에게 책임이 돌아오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뭘 했는지는 황 교수도 알고, 나도 황 교수를 존경한다. 왜 일이 번져가는지 모르겠다. 내가 있을 때 일을 열심히 했고 내가 배양도 했다. 그런 상태에서 (미국에) 왔다. 줄기세포가 있다고 생각했다. 황 교수가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미즈메디 셀이었다고 하고, 노이사장은 셀이 없다고 말하고 왜 그리 됐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줄기세포를 몇 개나 봤나.

"내가 본 것은 8개다. 3개는 서울대 자체적으로 했을 거다. 잘 모르겠다. 8개 만든 건 서울대에 매일 모이는 멤버들이랑 같이했다. 황 교수도 항상 온다. 황 교수, 나, 그리고 서울대 연구원 4명이다. 대학원생도 끼어 있었다."

-8개 중에 2, 3번도 포함돼 있었나.

"그렇다."

-2, 3번 셀 라인의 사진으로 11개의 줄기세포 사진을 만들었나.

"2, 3번 셀 라인으로 11개로 만든 거는 맞다. 셀이 만들어지는 데 시간 차이가 있었다. 처음에 6개가 만들어졌고 그중에 2, 3번을 제외한 4개가 죽었다. 오염 때문이었다. 그래서 2개 셀 라인으로 사진 작업을 했다."

-왜 그랬나. 나중에 줄기세포가 만들어졌다면 그것으로 촬영하면 됐을 텐데.

"논문은 시간 싸움이다. 사진을 찍을 때는 2, 3번밖에 없었다. 그 후 6개를 만들어 8개가 됐고, 나머지 3개는 서울대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것들에 대한 자세한 경위는 모르겠다. 황 교수 생각에 6개 셀 라인을 만든 경험이 있으니까 이후에도 충분히 셀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2, 3번으로 사진만 먼저 작업하자고 했다."

-그건 조작 아닌가.

"2개를 11개로 만든 것은 조작이다. 없는 셀 라인을 미리 당겨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줄기세포가 2개밖에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줄기세포도 조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사진 (중복) 문제가 생기는 거고, 테라토마도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다. 그래서 논문도 허위로 만들어진 거라는 얘기다."

-미즈메디병원에 있던 2, 3번 라인 셀 50개를 서울대로 옮긴 건 사실인가.

"옮겼다. 황 교수가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갔다. (단순히 옮기기만 했는데) 왜 둔갑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서울대에서) 2, 3번 라인 셀을 가져와서 냉동보관한 것은 내가 아니다. 왜 미즈메디 것으로 바뀌었는지는 황 교수도 모르고 노 이사장도 모르고…."

-노 이사장은 "논문을 섀튼이 썼다"고 하고 황 교수는 "서울대에서 썼다"고 한다.

"정확히 잘 모르겠다. 섀튼과 황 교수가 왔다갔다 하면서 쓴 줄로 알고 있다."

◆김선종(34)연구원은=미즈메디병원 의과학연구소 선임연구
원이었으며, 올 9월부터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박사
팀에 파견된 배아 줄기세포 배양 전문가다. 한양대 선배인 박종
혁 연구원과 함께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연구를 도왔다. 현재 박
사후 연구원(포스트 닥터) 자격으로 섀튼 교수와 일하고 있다.
10월 20일 MBC 'PD수첩' 취재팀이 김 연구원에게 "황우석 교
수가 곧 구속된다"는 등의 발언을 했고, 12월 4일 YTN은 PD수
첩팀이 강압 취재를 했다는 김 연구원의 증언을 보도했다.

특별취재팀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김선종씨 기자회견 "줄기세포 존재 100% 확신해와"

"맞춤형 줄기세포 처음 6개 만들었으나 4개가 오염으로 죽어
황박사 지시따라 줄기세포 2개로 사진 9개 부풀려 11개 만들어
이후 6개 또 확립했고, 추가확립한 3개는 몰라

연구원 6명 '맞춤형 줄기세포' 확립·배양 과정 함께 지켜봤다

미즈메디 있던 2, 3번 라인 셀 50개 서울대로 옮겼지만
줄기세포 바뀌었다는 주장 모르며, 황박사의 의심 억울
노이사장은 성격 급해 말을 하신것 같다

황박사 검찰수사·모종의 직책 언급하며 귀국해 줄기세포 만들자 말해"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제럴드 섀튼 교수 연구실에 파견된 김선종 연구원은 16일 논란에 휩싸여 있는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논문의 진위 여부와 관련, "서울대 연구실에서 8개의 줄기세포가 확립되고 배양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줄기세포의 존재에 대해서는 100% 확신해왔다"고 밝혔다.

그동안 취재진들과의 공개접촉을 회피해왔던 김 연구원은 이날 피츠버그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황교수팀이 만들었다는 11개의 줄기세포 중 8개는 자신이 확립ㆍ배양 과정을 목격하고 관리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특히 "처음에 6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었는데 그중 4개가 오염돼 2개가 남았고, 그 뒤로 다시 6개를 만들어 총 8개의 줄기세포가 확립됐다"면서 "내가 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배양, 관리해 왔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황교수의 지시에 의해 2,3번 줄기세포로 11개의 줄기세포의 사진을 만든 것은 사실"이라며 "이는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황교수팀이 배양한 줄기세포(5번)가 미즈메디 병원으로 옮겨져 수정란 줄기세포로 바뀌어졌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다"면서 "황교수가 배양중인 줄기세포 5개가 10여일후면 나올 것이니까 진위가 판명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황교수와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간의 공방에 대해서는 "노 이사장의 경우 황교수로부터 줄기세포가 없다는 말을 듣고 기자회견에서 '줄기세포가 없다'고 말한 것 같고, 황교수는 줄기세포를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황교수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고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 여부에 대해 "황교수가 나를 의심하고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으며, 줄기세포를 바꿔친다고 해서 내게 돌아올 이득은 아무 것도 없는게 아니냐"고 반문하고 "하지만 검찰 수사가 이뤄지면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황교수가 2-3차례 전화를 걸어와 줄기세포를 만들자며 귀국을 요청했으나 함께있던 박종혁 연구원과 함께 논의한 결과 가지 않는게 좋겠다고 판단, 귀국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연구원은 끝으로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조사에 응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조사에 응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황우석 논문 진위파동의 중심에 서면서 갖가지 억측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김연구원은 이날 시종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의 정항을 설명했으며 회견에는

부친과 부인이 동석했다. (피츠버그=연합뉴스) 2005.12.17. 08:28

[일문일답] 김선종 ,무거운 분위기속 억울함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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