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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카이저' 피에히, 22년 천하 무너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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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페르디난드 피에히가 독일 폴크스바겐 그룹 회장 자리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그는 1993년 폴크스바겐 CEO가 된 뒤 22년동안 경영을 쥐락펴락했다. [네카르슬룸=블룸버그]

‘자동차 황제(Kaiser Auto)’가 권력 투쟁에서 졌다. 독일 자동차 제국인 폴크스바겐그룹은 “페르디난트 피에히(78) 회장이 사임했다”고 25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약 두 주간의 내분이 일단락됐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피에히가 패배자가 되리라곤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이제 피에히는 22년간 쥐었던 권력을 내려놓고 계열사인 포르셰의 이사직만을 맡는다. 이참에 그의 아내 우슬라 피에히도 경영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은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폴크스바겐 내부에 힘의 공백이 생겼다”며 “절대 권력자가 사라진 이후 이 자동차 제국이 어디로 갈지가 글로벌 자동차 업계 관심”이라고 진단했다.

 일단 권력 공백은 오래 가지 않을 전망이다. 차기 회장은 다음달 5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영국 BBC방송은 “내분의 승자가 차기 회장에 오른다고 귀띔하는 폴크스바겐 내부자들이 아주 많다”고 이날 전했다. 그 승자는 바로 마틴 빈터콘(68) 현 최고 경영자(CEO)다. 피에히 손에 의해 발굴돼 키워진 인물이다.

 하지만 빈터콘이 피에히를 무조건 따르는 인물은 아니다. 그는 2007년 폴크스바겐그룹 CEO가 되기 전에 그룹내 롬바르기니와 아우디 등 중요 계열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폴크스바겐 CEO가 된 뒤에는 금융위기를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피에히만큼 카리스마가 있지는 않다. 단 “피에히처럼 조직 내에서 갈등을 유발하지는 않은 인물”이라고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평했다.

 실제 피에히는 갈등을 먹고 사는 인물처럼 비쳐졌다. 그는 빈터콘 전임자 서너 명을 언론과 인터뷰에서 불만을 흘리는 방식으로 쫓아냈다. 이번에도 그는 같은 방법으로 빈터콘 제거에 나섰다. 이달 12일 독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빈터콘과 거리를 두고 있다”며 “그가 일본과 미국 경쟁자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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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선전포고였다. 그런데 사태가 피에히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폴크스바겐 핵심 주주로 구성된 감독위원회 멤버들이 반기를 들었다. 노동조합과 지방정부 등의 대표들이 빈터콘 손을 들어줬다. 세력 분포는 5대1이었다.

 톰슨로이터는 “피에히가 세력 열세를 인정하고 빈터콘 해임안을 표결에 상정하지 않고 스스로 물러났다”고 전했다. 한 시대의 종언이다. 피에히는 자동차 기술자로선 드물게 경영 수완까지 보였다. 그는 1993년 폴크스바겐을 장악한 이후 미국식 지분 확장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아우디와 포르셰, 람보르기니, 부가티 등 최고 브랜드를 사들였다. 최고급에서 대중적인 차량까지 모두 생산하는 자동차 제국을 세운 셈이다.

 빈터콘이 피에히를 축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피에히가 제기한 문제점마저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폴크스바겐이 미국과 일본의 저가 차량 공세에 밀려 미국과 브라질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빈터콘 수명이 길지 않을 수도 있다

 더욱이 빈터콘이 피할 수 없는 일이 바로 구조조정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정리해야 한다. 이번 피에히와 내분에서 자신의 편이 돼 준 노동종합과 갈등을 빚을 수 있는 요소다. 일단 임기는 내년 중 끝난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페르디난트 피에히=자동차 기술자이면서 폴크스바겐그룹을 일군 경영자. 그는 1937년 4월 17일 스위스 빈에서 폴크스바겐의 개발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딸과 변호사인 안톤 피에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포르셰의 상징인 수평 6기통 엔진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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