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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접합」시리즈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1960년을 전후해서의 이른바 앵포르멜(비정형)추상에서 추방하여 오늘의 「접합」시리즈에 이르기까지 하종현은 그간 꽤 진폭이 넓은 전개 과정을 보여봤다.
뜯고 붙이고 또 두껍게 쳐바른 침침한 마티에르의 앵포르멜 화풍에서 그는 대뜸 명쾌한 색채와 형태의 기하학적 회화에로 전환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이른바 오브제작품에 전념한다.
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접합」사 시리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모는 서로간에 맥락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변모는 적어도 우리 현대미술의 전체적인 흐름속에서 분명하고 특징인 매듭을 짓고 있는 것이다. 좀 과장된 표현일지는 모르나 그의 변모의 과정은 60년대 이후의 우리 현대미술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하나의 이정의 반영이라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은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 하종현이 31일까지 현대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나는 그것을 그의 회화가 원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다의성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평면과 회화성, 물질성과 표면, 색채와 캔버스 (마대) 의 텍스처와 관련된 다의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작업은 「회화란 무엇이냐」 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말하자면 하종현은 회화를 그것이 회화작품이냐 아니면 표면으로서의 물체냐하는 극한점으로 몰고 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한편으로 70년대 중반기부터 우리나라 추상미술에서 강력한 움직임으로 대두된 모노크롬 (단색화) 경향의 회화에 있어서도 하종현의 존재는 특이하다. 그의 작품은 두말할것 없이 단색조다. 그리고 그 빛깔은 마대 그 자체의 것이며 오히려 무채색에 가깝다. 그러나 그 색채의「무표정」 은 뉘앙스에 찬 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또 한가지 지적되어야 할 것은 그의 모노크롬회화가 물질 지향적 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모노크롬 경향의 회화가 대개의 경우 비물질화를 지향하고 있는데 반해 하종현은 철저하게 색채 그 자체를 마대와 동질화시키고, 이를테면 마대의 텍스처에로 환원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종현 회화의 특이성 또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이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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