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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달러 통한 무역거래는 고비용 자국 돈 쓰는 동아시아 통화동맹 만들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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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호 08면

김춘식 기자

-세계가 중국의 성장률 둔화를 우려하고 있다.
  “성장률 둔화는 예견된 것 아니었나. 어느 나라도 초고속 성장을 영원히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성장 둔화라고 해서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지난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가 7.5%였는데 7.4%로 최종 집계됐다. 그랬더니 서양 미디어는 중국이 성장률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보도하더라. 난센스다.”

로런스 라우 홍콩중문대 석좌교수

  -전혀 달라질 게 없다는 건가.
  “중국은 엄청나게 큰 나라다. 규모의 경제가 작용한다. 작은 나라에선 뭔가 많이 만들어서 판다고 벼락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작다. 하지만 중국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이런 스케일은 다양하게 작용한다. 같은 7% 성장을 하더라도 수확체증의 법칙(increasing returns of scale)이 작용하면 7.7% 성장이 된다. 달라질 게 있다면 수출 중심의 성장은 끝났다는 점이다. 원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도 않았다. 제조업·부동산도 끝이다. 이젠 내수 진작이 필요하다. 교육·헬스케어·고령자 케어·환경개선 같은 공공재 투자가 그런 영역들이다. 인프라 수요도 여전히 크다. 이런 투자는 국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에서 양극화 감소 효과도 있다.”

  -중국 정부는 금리 인하나 부양책 등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인프라 투자, 공공재 소비 진작이 답이다. 금리를 낮추면 돈이 버블만 잔뜩 낀 자산시장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안 되고 고용이 늘지도 않는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유럽까지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의 첫 번째 양적완화는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을 때 실시돼서 그나마 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양적완화의 효과는 미미했다. 달러 가치만 하락했다. 환율 조작인 셈이다.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면 안 된다는 미국의 이념적인 이유 때문인데 한심하다. 그냥 환율 개입을 했다면 양적완화의 경우처럼 자산버블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양적완화든, 금리 인하든 숫자놀음은 중국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가구소득·고용·환경 등 중국경제의 실질적 개선엔 진척이 있다고 보나.
 “가구소득은 국내총생산(GDP)보다 약간 더 빠르게 늘고 있다. 고용은 그렇게 심각한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고령화가 진행돼도 은퇴 나이를 높이는 등의 조치 때문에 일하는 인구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그들에게 돌아갈 충분한 일자리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서비스업이 일자리를 많이 만든다. 특히 고령자 케어에 주목한다. 흔히 한국·중국 같은 동아시아 지역에선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효도를 중요시하는데 앞으론 불가능할 것 같다. 75세 아들이 95세 아버지를 봉양할 수 있겠나. 효심이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힘들다. 현재 중국에선 농촌의 30~40대들이 도시로 일하러 나가 시골엔 손자·손녀와 조부모들만 남아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물론 일자리도 늘게 될 것이다.”

 -환경 문제는 어떤가. 한국은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에 민감하다.
 “중국 정부는 환경 문제를 최대 현안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지방 관리들을 평가할 때 GDP 성장률, 외자유치 실적 등을 봤는데 앞으론 미세먼지를 얼마나 줄였는지, 수돗물의 질을 얼마나 개선했는지 등을 평가해야 될 것 같다. 사실 지금은 자산버블이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외자유치는 더 하면 할수록 중국에 손해다(웃음).”

  -미국과 일본은 중국이 주도하는 AIIB의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미국과 일본은 성급한 얘기를 하고 있다.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조직을 두고 투명성이 부족하다, 지배구조가 잘못 됐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5년 정도 후에 ‘중국이 특정 국가에 대출을 몰아주고 있다’고 하면 또 모르겠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나. IMF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에 끔찍하게 대응했다. 한국 정부에 공기업도 아닌 사기업의 부채를 해결하라고 강요하고 300% 이자를 쳐 떠안게 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당시 IMF는 서방 금융회사들의 도구였다. 투명성 운운할 자격이 없다. 일본 정부의 입장과 달리 일본 재계 인사들은 AIIB에 가입하고 싶어 하더라.”

  -기존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어떤가.
  “ADB는 대출 여력이 부족하다. 2013년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현 일본은행 총재가 ADB 총재를 그만둘 때 일본은 중국에 지분을 늘리라고 제안했어야 했다. 총재 자리를 일본과 중국이 번갈아 가면서 맡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그랬다면 아시아 지역 인프라 투자에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일본은 이미 97년 외환위기 당시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제안했다. 미국이 반대해서 무산됐다. 그때 그 미국 사람들은 동아시아 지역이 잘 되는 것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 득실을 더 따졌던 것 같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중국이 참여할 가능성도 있나.
  “중국의 참여 여부보다 우선 TPP의 금융 분야 자유화 조항이 우려스럽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에 리먼브러더스 같은 회사들이 들어와서 영업을 하게 해야 하나. 파생상품 거래는 굉장히 리스크가 크고 국가경제를 불안하게 할 요소가 많다. 또 TPP는 국영기업에 대한 제한이 많다. 중국의 국영기업은 앞으로도 꽤 오래 존속할 것인데 그것에 제한을 두면 좀 어렵지 않겠나.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의 시장이다. 일본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기도 하다. 일본이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에도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도 마찬가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는 어떻게 평가하나.
  “최근 중국과 파키스탄이 의견 접근을 봤다.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중국 입장에선 베이징에서 상하이를 거쳐 홍콩에 이르는 동부 지역은 발전했지만 서부 내륙 지역은 여전히 궁핍하다. 그렇다고 서부의 물자를 동부로 실어 날라서 해로(海路)로 수출하면 동부만 더 발전하지 서부가 발전할 수 없다. 그러니 중국 서부를 유럽까지 육로로 이어 서부를 발전시키겠다는 게 일대일로의 배경이다. 개인적으로 신 실크로드가 러시아를 통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중동의 너무 많은 나라를 거쳐가면 통과비 조의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 한국과 일본도 중국으로 물자를 보내 육로로 수출 물량을 실어 나르면 좋을 것 같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대체하려고 하나.
 “글쎄, 그건 아주 정확하게 현실을 보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존 브레턴우즈 체제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변동환율 때문이다. 너무 많은 변수가 있고 모두들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돼 있다. 세계경제의 발전과 안정을 원한다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율이 필요하다. 또 미국 달러화로 거래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중국과 한국 같은 제3의 국가도 모두 미국 달러로 무역을 한다. 하지만 이건 돈이 많이 드는 제도다. 자연스러운 건 자국 통화로 거래하는 거다. 하지만 미국은 그걸 원하지 않는다. 달러 변동성이 큰 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중국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골칫거리만 늘 뿐이다. 다만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결제동맹(clearing union)을 만들었으면 한다. 각자 자국 통화로 거래하고 동맹 안에서는 남는 돈을 서로 사주고 하는 일종의 국제결제은행(BIS) 방식이다.”

 -그런 동아시아 국가들만의 연합은 미국이 반대할 것 같다.
 “그럼 답이 없다. 미국이 동의하든 안 하든 각자 자국 통화로 거래하는 게 모두에게 이득이다. 미국은 무엇이 가장 건설적인 방법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AIIB처럼 반대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로런스 라우(劉遵義) 1944년 중국 귀저우(貴州)성 쭌이(遵義)시 출신. 64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뒤 69년 UC버클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76~2004년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 2004~2010년 홍콩중문대 총장, 2009~2012년 홍콩 행정회의 위원을 지냈다. 현재 홍콩중문대 석좌교수 및 CIC 인터내셔널 회장. 저서 『발전 모델: 한국과 대만의 경제성장 비교』 『미국의 대중국 직접투자』 『21세기 중국경제: 계량경제학적 접근』 등.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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