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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공 바둑교류의 시발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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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이 낳은 천재기사 조치훈은 중공을 대표하는 섭위평(32) 9단과의 대결에서 2연승을 거두었다.
이번 대국은 승패보다도 한-중공간 바둑을 통한 교류의 길이 열렸다는데서 더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조치훈과 섭위평의 이번 대국이 한국과 중공을 대표한 이른바 한-중공 교류전은 아니었다. 일본에서 명인과 기성 타이틀을 쥐고있는 조치훈의 이번 출전은 어디까지나 일-중공 교류전에 일본을 대표하는 기사로서 나간 것이다.
그러나 조치훈의 국적이 한국이라는 사실 때문에 중공측은 그 동안 조의 중공방문을 거부해왔다.
이번 중공대표와의 대국에 대해서도 중공측은 한때 이를 망설였으나 한국과의 스포츠 교류등 여건의 변화로 대국이 가능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중공과의 대국이 이루어짐으로써 조치훈은 내년에라도 같은 시합을 위한 중공방문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으며 조의 중공방문이 실현된다면 다른 한국기사의 중공방문 나아가 중공기사들의 한국 방문도 점차적으로 실현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섭의 이번 대국은 한-중공 바둑교류의 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섭은 중공의 전국바둑대회에서 네번이나 우승했으며 중공내의 「목하신체」 「중공 TV」 등 2개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최고의 실력자로 알려졌다.
80년의 세계아마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국제시합의 경력도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세계 최강을 자칭하는 일본 기계에서 정상을 차지하고있는 조치훈과의 이번 대국은 세계의 정상을 가름하는 자리인 동시에 중공의 기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로 평가됐었다.
조치훈의 승리는 이런 싯점에서 볼 때 그 무게가 더욱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중공의 바둑실력은 그 동안 11차례나 실시된 일-중공 교류전을 통해 만만치 않다는 사실로 알려져 왔다.
중공은 60년대 초반부터 자신들이 바둑의 종주국이라는 자각 하에 적극적으로 진흥정책을 펴왔다. 당시 중공은 그 일환으로 국민학교 특별활동시간에 바둑을 넣어 기사를 육성했는데 지금 일본을 방문중인 중공대표들이 모두 그때 바둑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중공은 83년 봄부터 프로기사제를 도입, 지금은 7단 이상이 10명 내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섭위평과 함께 이번에 일본에 온 부인 공상명 7단은 중공 여류바둑 제1인자로 중공당국이 우수한 바둑기사를 만들기 위해 남녀정상을 정책 결혼시켰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을 정도로 당국의 바둑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크다.
그 동안 11차례나 가진 일-중공 교류전의 종합전적은 중공이 40승 11패로 우세했다.
그러나 교류전에 참가한 일본대표가 꼭 일본정상을 대표할 수 있는 기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중공의 실력을 가늠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뜻에서도 조-섭의 대국은 의미가 있었으며 앞으로 한-중공 바둑 교류의 새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성순 동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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