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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인심강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할아버지는 남에게 주지도 않고 얻으러 가지도 않으셨지. 먹는 것 이외엔 집안식구에게도 엄하셔서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어. 말하자면 난 집지키는 도둑이었던 셈이야』 곧 칠순을 맞으시는 사돈할머니는 요즘들어 부쩍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나시는가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셨던 할아버지는 오직 식구를 배부르게 먹게하는 것이 전부였으며 자녀들 학교등록금만 내면 돈쓰는 것을 모두로 아셨다.
때문에 할머니는 할아버지 몰래 쌀이며 감자등 농산물을 팔아 자녀에게 용돈을, 그리고 친척들과 일꾼들에게 후한 인심을 써오셨다고 했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집안에 일단 들여놓은 곡식은 백섬이고 천섬이고 식구들이 먹었다고하면 탓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골동네에서 인심 잃지 않고 지금 자녀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게된 것은 그나마 할머니가 인심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머니는 회고한다.
「복은 비는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라는 부처님 말씀도 있다.
『여자는 때로는 남편에 대해 선의의 거짓말도 해야 된단다』
남편이 못하는 것을 아내가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할머니 나름의 철학을 말씀하신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인심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8남매 모두 출가시키시고 칠순을 맞으시는 할머니는 감회가 깊으신가보다.
내가 언니집에 있는 관계로 할머니랑 언니 시집식구들과는 아주 가깝게 지내고있다.
8남매 맏며느리인 언니밑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그래서 할머니에 대해 사돈 할머니가 아닌 친할머니의 정을느낀다. 잠깐이나마 할머니의 인심강의를 듣고 이제 칠순을 맞으시는 할머님께『남은세상 오래오래 건강히 사세요』라는 인사를 드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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